내껄 내어줘도 그것을 다시 생산할 힘이나 또다른 비슷한 것을 생산할 힘이 있는 사람만 줄 수 있다.

 

재생산의 메커니즘없이 누군가에게 주는 사람은 허접한 사람이다.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다. 

재생산의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어도 누군가에 주지 않는 사람은 쓰레기다. 애초에 가진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겠지만.

 

패스를 한다면 그 패스를 다시 받을 수 있는 사람만이 줄 자격이 있다.

 

뭔가 있어야만 뱉을 수 있다.

내어줘도 큰 타격이 없을 때 가능하다.

그럴 때 내어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얻는 것이다.

그 주는 행위는 호흡과도 같아서 지속됨과 동시에 생명을 얻는다.

더 강해지고, 더 변화한다.

 

강한사람만이 내어줄 수 있다.

그렇기에 강한 놈만 더 강해질 수 있다.

내어주는 사람은 본래 강한 사람이다.

애초에 인간의 본능상, 착한척하려고 없는것을 내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연기하고 내어주는 척의 직전까지는 가능하지만, 정말로 내어주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어있다.

 

내어줘도 그것을 돌려받을 수 있을 정도의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배우가 일부러 노이즈마케팅을 할 수 있을 때는 사람들 앞에 이미 있고 그사람이 찍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구조가 있어야한다.

그저 '주는대로 받는다' 등의 교훈적이며 인문학적인 공부도 분명 필요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절반이다.

물리적으로 받을 수 있는 토대가 있어야한다.

 

노인들은 인색해도 무방하다.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주변사람들에게 잘해주고 내어줄 필요까지는 없다.

환생을 강하게 믿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그리고 노인들은 그 인색함을 바탕으로 서비스업에 종사하면 균형이 올바르다.

인색하기만 하면 에너지가 남기 때문에 서비스업에서 반대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

이미 인생에서 교훈은 얻을대로 얻었을 것이기에 그정도는 잘 할 수 있다.

 

 

어릴 때는 줘야한다.

되돌려받을 수 있는 물리적토대가 갖춰져 있다고 봐야한다.

불치병에 걸려서 빨리죽게 된 사람이라면 예외다.

어릴수록 글로벌로 놀아야하고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도 뭔가를 주는 오픈소스같은 삶을 사는 것이 옳다.

에너지가 있고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 친절함 때문에 반대에너지인 분노를 통해 세상에 기여하는 기술을 만들 수 있다.

 

이런 것을 반대로했을 때 사람은 고꾸라진다.

 

나이뿐만 아니라 재능 등 적재적소에서 힘이 있을 때, 내어줄만 할때 내어줌으로써

더 강해질 수 있다.

누구나 강할 때가 있을 텐데, 그때 올바른 일을 행하면

더욱더 강해지는 것 뿐이다.

 

내어준다는 것은 혼자가 아닌 분산된 네트워크, 여러사람과 함께하겠다는 뜻과 같다.

아직 사람들이 내곁에 있을 때, 범주를 키워나가야만한다.

0에서 마이너스로 되는 순간, 무언가를 빼앗는 범죄자가 되는 소름돋는 악역의 등장씬을 보기 전에 자신의 크기를 키워야한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라이프코리아트위터 공유하기
  • shared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