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을 통해 감각을 입력받는다.
그러면 감정이라는 것이 생긴다.
그 감각에 대한 가치판단을 한다.
유물에 대한 가치판단을 감정한다고 표현하는 것과 한자 뜻은 달라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화나거나 슬프거나 웃거나.
쓰레기 분리수거하듯 분류된다.
어린 아이들은 그런 감정들을 여과없이 내비친다.
곧바로 표현한다.
화낼만한 상황에서 화를 냄으로써 상황이 정리가 된다.
그게 정상적인 상태다.
도망가야할 상황에 도망간다면 그건 정상적이다.
물을 사람에게 뿌리는게 아닌 흙바닥에 뿌리면 아무런 부작용없이 정상적이고 잔잔하며 평온한 시간이 되는 것처럼 그야말로 정상적이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세상은 복잡하기 때문에, 그러한 감정들이 항상 올바르지는 않다.
도망쳐야 한다는 감정이 들기는 하지만 사실상 도망치지 않아도되는 그러한 상황이 존재한다.
10만원의 돈을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10만원 이상의 가치를 내가 얻어가는 상황도 있다.
그렇기에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 이외에, 그것을 감싸는 수많은 뇌의 부분들이 진화해왔다.
편도체반응을 하지 않고, 뭔가 다른 반응을 하는 기능도 생기게 된 것이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이득이 되는 상황을 활용하게 된 것이다.
개인이 개인으로써만 살아가는게 아닌 약간의 희생을 통한 집단 사회를 형성하여 어마어마한 이득을 보는 그런 레버리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감정이 올라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표현되지 않도록 막는 순간 감정은 '생각'이라는 형태로 뒤바뀐다.
생각이란 곧 표현되지 못한 감정이다.
나의 모든 생각은 결국 감정이다.
세상에 대한 나의 반응이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현대인으로써, 아새끼가 아닌 어른으로써 너무나도 당연한 스킬이다.
다시말해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한 스킬이다.
내가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생각을 한 뒤 행동을 한다면 어마어마한 이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메커니즘으로 인해 '너무나도 많은 생각'이 생겨나버렸다.
단하나의 감정도 표출되지 않고 무조건적인 생각으로 치환되어버리는 것.
모든 것이 나의 탓이 되어버리는 것.
모든 것을 위해 나를 희생시키고 나를 표현하지 않는 것으로 변모해버리는 위험성이 동반되었다.
감정은 예전엔 최신 생명기술이었을 것이다.
생각(지식, 정보 등에 치우친 것)도 마찬가지로 정보시대 때에는 최신 기술이었다.
하지만 이제 너무나도 많은 생각이 있기에 전혀 다른 기술이 필요해졌다.
너무 많은 생각으로 인해 오히려 편도체 반응이 더욱 즉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참아왔던 것을 모두 표출해버리고 있다.
어떻게 해야할까?
이제는 그 생각을 넘어선 마음이 필요하다.
뇌를 버릴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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