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마세요' 라고 말하는 것은 깊이가 없다.

내 모든 에너지를 다해서 싫어하는 표정과 말투를 상대에게 건넨다고 우주가 그것을 알아듣고 거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면 거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과 같은 장소에 있는 것을 수락한 건 나 자신이다.

거절하지 않았으니, 다가온다. 

너무 당연한 메커니즘이다.

 

거절에는 깊이가 있다.

키를 자물쇠에 넣고 돌려야만 자물쇠가 열린다.

키가 짧으면 모든 걸쇠를 돌릴 수가 없어서 절대로 열리지 않는다.

 

내가 키를 집어넣었다고해서 무조건 되야하는게 아니다.

억울함을 느낄일이 아니다.

거절했지만, 거절하지 않았다.

4cm의 거절을 했지만, 거절을 하려면 10cm의 거절이 필요한 것이기에

나는 거절하지 않은 것이다.

 

직장내 성희롱 같은 문제가 대체 어떻게 피해자에게만 잘못이 있을 수 있을까?

가해자도 물론 처벌해야겠지만

직장에 있는 것을 허락하고 허용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작은 거절은 했지만, 큰 거절은 하지 못했다.

수많은 징조들을 보고도 큰 거절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본인의 책임이다.

 

인생의 힘든 점도 마찬가지다.

인생이 힘든 것을 주는 것을 거절하지 않았다.

싫어하고 거부했지만, 큰 거절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큰 거절을 통해 자기가 얻어야할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나에게 부정적인 것을 다가오지 못하도록 완벽하게 차단한다.

설령 그 거절 때문에 가난하고 부족하고 약자인채로 있어야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인다.

오히려 그것이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그곳에서만 인간답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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