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유언스타인 교수는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너를 다치게 해서 미안하다'같은 말을 하면 왜 진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자랑이나 비난을 상대방에게 들으면 감사와 사과를 표현하지 않게 되는지도 설명할 수 있다"며 “이것은 감사와 사과가 왜 연설 같은 곳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인정되면서, 자랑과 비난은 금기시되는지를 알려준다”고 말했다. -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27420 "고마워" "미안해" 왜 쓰기 어려울까

 

 

기사의 책임교환이론에 따르면 미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상황을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안함을 받고싶은 이유는 상대방에게 상황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기 떄문이다.

 

내 책임이던 상대방의 책임이던 미안함이란 상황이 망했다는 전제에서 작동한다.

내가 했어야했는데 못했어. ( 게임은 끝났어, 이미 늦었어 )

쟤가 잘했어야했는데 못했어. ( 게임은 끝났어, 이미 늦었어 )

 

흡연자들이 안좋은 상황을 잊기위해 담배를 태우듯이 

이런 미안함을 그냥 날려버리는 순간 고통으로 다가온다.

담배를 많이 피면 건강이 안좋아지고 죽어가듯이 미안함을 해결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을 때 현실은 당연히 계속해서 미안한 상황으로 남아있다. 당연히 중독되어 계속해서 고통을 느껴야한다.

 

미안함은 언제나 고마움으로 연결되어야한다.

작용을 하면 반작용이 있듯이 당연히 연결되어야하는 물리법칙을 중독스러운 회피도구를 통해 끊어내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도록 몸이 망가지게 되어있다.

100% 내 책임이야. 하면서 멋있게 담배를 태우면서 자위하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오글거리며 징그러운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건 자기자랑이며 허세다. 책임은 결국 힘이되어서 돌아와야만한다.

고통스럽다고 담배만 쳐필게아니라, 그 고통을 딛고 변화를 만들어야한다.

 

미안함을 느낀다면 내가 더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기에 

나에 대한 고마움이 동시에 병행되어야만한다.

왜냐면 내가 책임을 질 정도로 실력이 있고 그만큼 같은 팀은 아무것도 안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사과를 받고싶다면 상대방에게 고마움도 동시에 가져야한다.

책임이 상대방에게 있을 정도로 내가 아래의 위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과는 우선 챙겨두고, 위치와 권한도 내가 가지겠다는 심보는 따귀를 맞고 내쫓길 뿐이다. 

 

 

미안함은 그렇게 언제든 고마움으로 변환될 수 있는 양자성을 가지고 있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존재하지 않으면 미래에는 절대로 바뀌는게 없다. 감사가 분명히 있어야만 그 에너지를 통해 움직일 수 있다.

미안해서 고통스럽다면 나에게 감사하자. 나는 그만큼 대단한 사람이다. 책임 질줄 아는 사람이다. 그 감사를 통해 상황을 변화시키고 더 발전시키면 된다.

사과를 받지못해 고통스럽다면 상대방에게 감사하자. 상대방이 그만큼의 권한이 있었던 것이다. 실제적인 위치나 직급을 말하는게 아니라 그만큼의 몸짓, 그만큼의 말을 할 수 있는 분명한 사람이라는걸 기억해야한다. 내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맡겨버렸으니 내 잘못일 수 있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책임을 가져온다던지해서 미래를 변화시켜야한다. 그 책임을 지고있던 상대방에게 감사해야만 그것을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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