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느끼는 원함은 돈을 원하는 것과 같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원함은 현물을 원하는 것과 같다.

왜 두려움을 느끼지 않냐면 내 두려움 감정을 해소했기 때문이다.

감정을 해소했다는게 뭐냐면 그냥 술먹고 망각한 느낌이 아니라

감정을 충분히 느껴주고 대화를 했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하면 안되는 일인줄 알고 '앞으로 절대 이 감정을 느끼도록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 라는 마음을 먹는게 해소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면 해소가 된다. 딱히 상황이 바뀌지 않아도 말이다.

그냥 듣는게 아니라 내편이 되어주고 상황을 바꾸려고 마음먹어주는 상대방이라면 해소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넘에게 맡기거나, 기다리거나 하는게 아니라 그 상황을 해결할 도구를 직접 내 스스로 움직여 조달하게 된다.

너무나도 급하고 너무나도 필요하기 떄문이다.

아무일 아닌척, 당연히 고통을 받아야하는 척(아프니까 청춘이다, 신입은 원래 힘드렁 등) 하면서 기다리고 참아내는게 아니라

지금 당장 움직인다. 쓰레기통에서 빠져나오고, 직접 잡초를 뽑는다.

대화를 듣고 이해를 했으니, 얼마나 아픈지 보았으니 아프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건 두려움 없는 원함이다.

못을 박아야하는데 망치가 없다.

공구상에 가서 망치를 사러가는데 무슨 두려움이 드는가?

망치가 없는 순간 트라우마처럼 두려운 상태였던 나는 망치를 사러갈 상상도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해소가 되었다면 그냥 사러가는 거다. 내가 필요하니까 사러가는 것 뿐이다. 오히려 즐겁다.

 

현물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집착이 있을 수 없다.

천천히 하나씩 참아가며 해나가는게 아닌 곧바로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1초만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차타고 공구상에 가는 시간 정도는 걸리는 것이 물리법칙이다.

어떤 것은 빠르게 이루어지겠지만 

어떤 것은 그것에 알맞는 시간만큼 지연되고 얻는 것이다.

 

망치값(죽음, 돈이 줄어드니 미래가 죽는듯한 느낌을 가진다.)이 아까워서 사질 못했던 내가

죽음을 받아들일 때 이루어진다.

돈이 얼마가 있던 감정과의 대화를 통해 그것의 필수성을 느꼈으니 사러 가는 거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라이프코리아트위터 공유하기
  • shared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