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r ( 공포 ) 는 danger, revere와 같은 어원을 가진다.

revere => expressing intensive force

revere는 강렬하고 팽팽한 힘이 느껴지는 대상에게 느껴지는 경외심, 숭배감이다.

경외심은 공포와 아무런 차이가 없다.

힘이 있는 대상에게 해를 입을 것이라는 느낌이 공포다.

그렇기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대상은 언제나 수직적으로 밑의 입장이다. 보조적이면서 을의 입장이다.

 

 恐자는 巩(굳을 공)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巩자는 흙을 다지는 도구인 달구를 들고 땅을 내리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렇게 땅을 내리치는 모습을 그린 巩자에 心자가 결합한 恐자는 마치 달구로 심장을 내리치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사람이 놀라거나 공포에 떨게 되면 심장 소리가 크게 들리게 된다. 恐자는 그러한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달구로 땅을 내리치면 ‘쿵’ ‘쿵’하고 소리가 나듯이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뜻이다. - 네이버 한자

 

한자도 심장이 굳는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소위 누군가에게 반하는 '심쿵'도 공포를 느끼는 것과 차이가 없다.

힘이 있는 대상을 보았을 때의 리액션이다. 

사랑이나 연애감정이 아니니 주의하자.

 

 

hate ( 미움, 증오 ) 는 상대방과 나의 차이나 관계에서 느껴지는 것이 아닌 오직 나혼자만 느껴지는 감정이다.

 

뜻을 나타내는 심방변(忄(=心, 㣺) ☞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상처를 내다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曾(증)으로 이루어짐. 상대방(相對方)을 상처내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뜻함. - 네이버 한자

한자 미울 증 자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내고 싶은 마음을 말한다.

미워할 오 자는 악할 악자와 똑같다. 

마음 심자 위에 두번째 아 가 붙어있는 두번째 마음이다.

상대방을 두번째로 보는 것이다.

언제든 내가 첫번째이기에 상처줘도 좋다고 생각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미움과 증오라는 마음은 내가 그 대상보다 힘이 있기 때문에 증오를 느끼는 것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힘 있는 대상도 미워할 수 있다.

내가 위라고 생각하는데 그만한 대접을 받지 못했을 때 느껴진다.

그런데 내가 위면, 내가 힘이 있으면 당연히 미워질만한 상황이 나오지 않아야한다.

그런데도 튀어나오는 착각이 미움과 증오이다.

내가 더 올바르고 우선시 된다는 정신적인 마음에서 비롯된다. 힘이 개입하지 않는다.

 

 

만약 공포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면 힘이 있는 대상에게 확실하게 죽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미움과 증오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면? 무슨차이가 있는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내는 행동을 하지 않게 될 뿐, 아무런 차이가 없다.

나의 힘의 변화는 아무것도 없다.

내가 힘이 있을 땐 상대방을 상처낼 수 있겠지만 (그래서 기쁨을 얻을수야 있겠지만), 힘이 없을 때는 상처내려고하다가 오히려 상처받는다.

죽이려고하다 죽는다.

 

미움, 증오, 짜증과 같은 마음은 자기가 가장 위라고 생각하는 혼자만의 착각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그 상태, 그 자리에서 나혼자 대상에 대해 감정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쎈 사람만 미움을 가졌을 때 살아남는다. 그 사람 또한 언젠가 힘이 떨어져 죽는다.

미움은 가지는 순간 죽는 독이다. 아무런 쓸모가 없는 악이다.

미움은 없애는 것이 무조건 옳다. 100% 옳다.

100% 옳은 건 없어, 정답은 없어라고 지껄여서는 안된다.

정답은 있다. 밥을 안먹으면 죽는다. 와 같이 분명한 정답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공포를 개무시하며 나쁜것이라고 취급하고, 미움은 당연하고 ^인간적인^척 귀여운척 하려고 한다.

오히려 사람에겐 공포가 필요하다.

공포는 경외심이다.

힘의 차이를 분명히 인정하고 있을 때 오히려 죽지 않고 살 수 있다.

그 힘이 있는 곳에 가지 않을 수 있는 명백한 선이 그어져 있기 때문이다.

공포심은 힘이라는 변수가 개입한다.

만약 공포가 느껴짐에도 공포와 함께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곳에는 필연히 힘이 존재한다.

내가 힘을 얻을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것을 가지러 가지 않았는가? 위험함에도 그것을 만지고 컨트롤해보는 시도를 하지 않았는가?

 

어떤 행동을 하려고할 때

미움과 짜증이 난다면, 무조건 그만둬라. ( 말이 많아지거나, 투덜대거나 할 때 )

미움과 짜증이 난 상태는 오히려 공포심이 결여되어있기 때문에 죽는다.

하지만 공포심이 생긴다면 오히려 계속 가야한다. ( 입이 다물어져 말이 없어지고, 진지해질 때 )

간다는 것이 공포의 대상과 맞다이를 뜨러 간다는 건 아니니까. 협력하러 가는 것일 수 있고 배우러가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혼자 말장난으로 착각하지는 말자.

결과적으로 그 힘의 차이나 갑과 을의 관계가 있다는 허상을 깨부술 수 있다. 선택하는 순간 그 공포의 대상을 먹어버리고 하나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책을 가야하는데 추울것같은 공포가 느껴질 때 그 공포와 함께 가야한다.

미묘한 차이를 분명히 인지해야만한다.

 

그렇게 공포를 선택함으로써 힘을 얻어가면,

자연스럽게 미움이나 증오따위는 사라질 수 밖에 없다.

힘이 있는데 누가 건드리겠는가. 미워할 수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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