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은 천민 중에 천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인의 장점이 부각되어 마치 평화롭게 보이는 세상이 만들어져 있다.

 

경제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멋있다고 느끼게 만들어진걸까? 왜 이런 최면에 걸린 것일까?

 

경제란 아버지가 살림살이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 무언가를 조달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economy라는 영어단어도 비행기에서 싸고 좁은 곳이다.

좋은 것이 아니다.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지 절대로 제일 멋있고 제일 먼저 추구해야할 가치가 아니라는 뜻이다.

경제와 돈은 뭔가 우리내 아버지를 보듯 아련함이 느껴져야만 한다. 그게 올바른 태도다.

아직 모든 가능성을 발현하지 못한 사람의 모습이다.

우리가 '청결'이라는 것도 중요시 여기지만 청결하기만을 위해서 모든 인생을 바치지 않는 것처럼 부분적이다.

너무나도 부분적이다.

가족에 아버지가 일부의 구성원이듯 부분에 불과하다.

아버지는 늙어있다. 전성기는 지나셨다. 그게 아버지라는 단어의 개념이다. 그 에너지를 나에게 준지 오래다. 떠맡긴지 오래다.

태어난 순간 기존에 있었던 모든 것은 과거의 것으로 규정할 수 있을 만큼의 다름, 차이, 변화를 만들어내야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바라봐야 진짜 힘이 나온다.

아버지와 같아지고 아버지에게 복종만을 하는건 변화하는 시대에 뒤쳐지는 자살이다.

 

사 - 농 - 공 - 상

둘째 - 첫째 - 어머니 - 아버지

의 느낌으로 가야한다.

 

성경의 카인과 아벨에서

첫째아들인 카인은 농사를 지었고 둘째 아들 아벨은 양치기, 유목민 이었다.

죄인의 역사인 이 세상은 카인이 아벨을 죽인 순간부터 거꾸로 흘러들어가 아버지가 가장 강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개인과 가족, 조직과 사회가 해야할 일은 유목적인 것에 가장 큰 가치를 두는 일이다. 

태어나는 아이들, 즉 지금보다 더 큰 것을 추구해야만한다. 변화를 추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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