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이 담긴 행위와 그렇지 않은 행위가 있다.
컵이라는 물품은 뭔가를 따라서 마실 수 있는 삶을 불러오고 끌어당긴다.
컵을 최초로 만든 사람은 그런 삶을 끌어올 수 있도록 하는 뜻을 담고 만든 것이다.
같은 컵이라도 하더라도 누구는 그런 꿈과 뜻을 담아내지만 누구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아무런 뜻없이 만들어내기도 한다.
뜻을 담은 행위는 디테일하고 강하다. 정확히 그 길로 갈 수 있도록 정글도를 들고 풀을 쳐내면서 그 길을 열었기에 정확히 그 길로 그 결대로 따라갈 수 있다.
아무런 뜻도 담기지 않은 행위는 그저 정글 한복판에 알아서 길을 내고 살아가라고 던져놓는 것과도 같다. 마치 대형마트에서 전부다 진열했으니 알아서 사고싶은 것 사가라는 식의 갑질행위다.
뜻이 담긴 제품을 산다는 것은 누군가 이끌어주는 방향을 따라가는 것과 같다. 무지한 내 세계에는 없었던 새로운 세계로 손쉽게 이동할 수 있다.
그렇기에 애플 같은 제품을 그냥 사는게 아니라 스티브잡스라는 대장을 중심으로 종교적인 이끌림이 생기는 것이다. 그가 길을 열어주고 있다.
그냥 알아서 하라고 했으면 아무것도 못했을 나에게 새로운 삶과 생명을 주고 있다.
그렇기에 인간의 뜻이 담긴 모든 행위가 곧 신의 행위이다.
신이란 우리를 이끌고 더 좋게 하는 존재가 아닌가. 단순히 모든 것을 알고 가만히 지켜보는 존재이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스스로를 도울 수 있는 인간에게는 신이 내재되어있다.
신이 아닐수도있지만 신일 수도 있다.
내 행위에 뜻이 담겨있다면 말이다.
누군가가 뒤에서 따라올 수 있도록 없던 길을 개척한다면 말이다. 그게 의도이자 뜻이다. 생각에 길을 내는 것이다.
마츠다 무네아키 사장님이 말한 것처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제품에는 뜻이 담겨있다.
뜻이 담겨있은 제품은 언제나 미완성이다.
그것을 사용하는 사용자들이 있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미 있는 것. 이미 정복된 땅에는 갈 필요가 없다. 새로운 것이 아닌 이상 사람들이 올 필요가 없다.
아직까지도 무언가를 '문제'로 바라보는 시선을 가진 곳으로 간다. 문제가 있고 고통이 있는 곳으로 간다.
그런 곳에는 아직 사용자들이 따라와야할 생각의 여지, 빈 여백의 공간이 있다.
그런 길을 내고자할 때 오히려 내가 그 길로 이끌리면서 신나고 즐거운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인가 신이 나를 이끌고 있는 것인가 구별할 수 없다.
내가 먼저 그런 이끌림을 준 신에게 감사하기에 나의 제품도 감사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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