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호러물에 나오는 것처럼 누군가가 갑작스레 내 눈앞으로 얼굴을 들이밀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주식투자를 할 때 그렇고, 적 팀 진영에 있을 때 그렇고, 처음 가보는 길, 싫어하는 것이 많은 상황일 때 그렇다.

 

불확실을 정확히 느껴본다면 그것에 대한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사위 눈이 어떤 것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것처럼 불확실한 랜덤성은 그 어떠한 개입도 불가능하다.

공격이 들어오면 공격을 당하는 그저 희생양의 상태이다.

 

하지만 무지한 인간은 그 상태를 컨트롤할 수 있고 자신있다고 자기를 속인다.

불확실하지만 괜찮아. 할 수 있어. 라는 마음을 먹는다.

혹은 공포스러운 상황이 왔을 때 재빠르게 대처하면 그만이라 생각하고 힘 자체를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일당백으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밤길이 무섭지 않게 되듯이 불확실함을 없애보고자 노력한다.

그렇기에 자기를 갉아먹고 희생하고 참아내며 무작정 달려나간다.

주사위에서 6이 나온 것을 자기탓으로 돌리며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누구는 살아남고 누구는 죽는다. 

하수구에 사는 쥐새끼마냥, 고생대 생물의 약육강식 세계마냥 진화의 끄트머리에 있는 더럽고 조잡한 생각이다.

 

내 몸 중 일부분을 불확실함에 걸 수 있는가?

단 하나의 상처만으로 사람은 죽는다. 피가 다 세어나온다.

도박은 실력이 아니다. 그저 진화의 끄트머리에 있었던 괴물들의 잔재일 뿐이다.

 

불확실함에 대한 해결책은 단 하나다.

하지 않는 것. 포기하는 것. 뒤로 가는 것.

 

나의 생각이 돌덩어리가 되어서 뒤로 갈 수 없을 떄, 조정하지 못할 때 사람은 불확실함과 예측불가능성을 느낀다.

적들이 공포스러운게 아니라 나 자신이 공포스러운 것이다.

불확실함을 느낄 때 잘 관찰해보면 나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그 선택지 말고는 선택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을 느낀다.

 

만약 또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그어떠한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불확실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그런 느낌이 들 때 다른 선택을 하면 그만이다.

곧바로 뒤로 빼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좀비마냥, 공포호러물 영화를 찍듯이 땀을 흘리며 그 불확실함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망한다.

삶이 두렵고 어려워진다. 사실은 자기자신이 가장 두렵고 공포스러운 존재인 것을 모르면서 세상을 원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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