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사람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 정말 두려워보인다고 생각하는 것.

그걸 그냥 하면된다. 그걸 해결하면된다.

거기는 동기부여따위가 1도 필요가 없다.

그만큼 두려운 것은 그만큼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거기선 그냥 한다. 아무런 생각없이 그냥 할 수 있다.

 

두렵기때문에 가는 것이다.

 

 

 

어떤 영역에서 실력이 부족하고 단점이 발견되는 것은 나에게 두려운 것이 아니라 '어려운' 것이다.

나는 그저 그것을 못할 뿐이다. 환경과 재능의 차이일 뿐이다.

거기는 호기심이 아니라 결핍이 가장 먼저 작용한다.

궁금해서가 아니라 내가 하자가 있고 못났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이다.

 

 

고등학생에게 눈앞에 있는 수2 문제보다 리만가설 문제가 어렵다.

그럼 리만가설을 풀러가라는 것인가?

또 그 고등학생이 용돈이 없는 것이 어려워서 돈을 벌러나가야하는가?

그렇게 따지면 모든 고등학생이 돈을 벌러가야하고, 모든 노동자는 공부를 하러가야한다.

논리구조가 미쳤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이건 아니다.

한글의 문제인지 어려움이란 것을 정확히 파악하는게 정말 미치게 어렵다.

동네 조기축구선수가 프로축구선수를 이기기 어렵다고해서 프로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그 조기축구선수의 직무, 인간관계 등 모든 것을 다 따져봐도 프로축구선수가 되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다. 

어려움이란 아무리 극한까지가도 끝이 없다.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곳이다.

 

 

어려움과 다르게 두려움이란 선형적인 구조, 계층적인 구조를 말하지 않는다.

도전이란 어려움을 극복하는게 아닌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다. 

두려움은 한번 사라지면 다시는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두려움이 실체가 없는 가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어려움은 실제적이지만 두려움은 가상적이다.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것에서 결핍을 느낀다면, 그것을 극복하는게 아니라 두려움을 극복하고 두려움이 있는 곳으로 가면 되는 것이다.

 

남자에겐 다른 남자보다 멋있어지는 것은 어려움이다. 같은조건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에게 다른 여자는 두려움이다. 모르는 것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남자의 능력을 가지고 여자에게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어려움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데미지를 참고 방어하는 게임이라면

두려움은 내가 가진 도구로 저쪽에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당당함을 가진 공격 게임이다.

 

기본적으로 두려움으로 간 사람은 자기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의 문제를 해결한다.

오히려 자기자신에게는 단 하나의 결핍도 없는 온전한 영역이기에 그곳으로 갔을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문제없이 태어난 영역 이니까 그것을 선택하기만 하면 이미 문제 해결책이 내 안에 있다.

두려움을 극복한다는 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노력을 통해 성취하는 것이 아닌

부처님의 사자후처럼 한순간에 내가 유아독존이 되는 힘을 발휘하는 방향이다.

 

하나도 어렵지 않는 곳이 곧 두려운 곳이다.

두려운 곳은 곧 하나도 어렵지 않은 곳이다.

 

가치라는 것은 두려움으로 갔을 때만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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