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편의 와드는 우리팀에겐 단점이다.
우리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주고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
그냥 놔두면 그 와드는 우리팀에겐 '단점'이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1HrM7iavL48&t=21s
그런데 페이커는 상대팀 와드의 효과를 역이용한다.
와드를 지우고 몇초간은 상대방에게 시야정보가 간다는것을 알고 그 몇초간 바론을 떄린다.
상대팀은 그 모습을 보고 차라리 그 정보가 없었으면 없었을 경각심과 혼란이 생겨난다.
시야가 사라지는 순간 페이커는 정글을 돌아서 뒤로 돌아들어간다.
그냥 돌아가는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거짓정보를 준다음에 돌아갔기에 그 행동은 효과적이다.
그렇기에 먹힌다.
와드를 박을 수도 없고, 안박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장점은 그대로 이용하고, 단점은 즉 상대팀의 장점은 속여버린다.
단점은 더이상 단점이 아니라 이용가능한 아이템이 되어버린다.
배구선수 박정아 선수의 케이스도 비슷하다.
박정아 선수는 공격력이 좋은 대신 리시브를 못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2016 리우올림픽에서 이정철 감독은 리시브를 못하는 특성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하지않고 마치 극복하기를 바라듯이 교체하지도 않고 계속 그대로 방치함으로써 엄청난 실점을 하게 된다.
그 일로 박정아선수는 SNS 스컴들에게 심한 욕과 성희롱을 당하는 큰 좌절을 맛보게 되었다. 나는 이정철 감독이 감독으로써 해야할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화가나고 정말 얼마나 인생 실력에 있어서 허접한지 가늠이 안된다.
선수의 장단점을 활용하는 건 감독의 능력이다. 1:1 게임도 아닌 팀게임에서 한 선수의 단점을 고스란히 내보여줄 정도로 허접한 실력과 인성은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오점과 상처를 남겨버렸다.
그것과 정반대로 리우 다음인 2017시즌 박정아 선수의 소속팀 도로공사에서 김종민 감독은 그 단점을 활용하기위해 리시브를 하지 않는 전략을 택했다고 한다.
팀동료가 대신 한발 더 뛰더라도 리시브 포지션에서 수비를 담당하는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리시브 못하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지만 못한다고해서 기용을 하지 않거나 수비연습을 집중하게 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해서 팀동료들이 무조건 모든 공을 100% 다 받을 순 없고 박정아 선수도 수비를 해야할 상황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단점이 노출되면서 상대팀의 선수들은 당연히 박정아 선수에게 공을 때리는 것이 우선전략이 되어버렸을 테고, 그것에 매몰될 가능성도 가지게 된다. 역으로 같은 팀에서는 그 지점이 머리에 인식되고 있기에 오히려 수비집중력이 더 늘어날 수 있다. 만약 수비능력에 대한 그날 컨디션이 100%인 선수가 50번만 수비하는 것보다, 박정아 선수와 함께 뜀으로써 2배인 100번의 수비를 할 수 있다면 효과적인 수비상황을 훨씬 더 많이 만들 수 있는 카드가 생기는 것이다. 단점은 그렇게 끼워맞춰줄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공간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배구를 그렇게 많이 본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모르지만, 박정아선수가 도로공사 첫해에 우승과 mvp를 받은 것과 김종민 감독의 인터뷰를 보았을 때 그 전략이 유효할 정도가 아니라 완벽한 전략이었다고까지 생각할 수 있었다.
단점을 없애거나, 줄이거나, 극복하거나, 무시하는게 아니다.
단점을 일부러 당당하게 노출시키는 것. 속이는 것.
그리고 예상된 움직임이 들어왔을 때 그것을 역이용 해야한다.
내가 ( 우리팀 ) 잘해도 -> 소용이 없다.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집중하고 수련하는 것은 사춘기 아이같은 레벨이다.
내가 잘하는지와 아무런 상관없이 적이 더 잘하면 패배한다.
나의 능력치의 레벨과 완전히 다른차원에 있는 적의 능력치라는 것을 고려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
내가 잘해야한다는 레벨에서 넘어선 다음에는 적팀이 되어보야아한다.
적팀이 되면 나는 적팀이 무엇을 할지 알게 된다.
그럼 어떻게 되는가?
적팀이 되어보았기 때문에 나의 팀과 적팀과의 관계를 처음 인식하게된다.
우리팀이 힘이 약한대도 불구하고 적팀을 고려하지 않고 '괜찮아' '틀리지않았어' 따위의 고집을 부리는 순간 그 게임은 무조건 지게되어있다.
나는 언제나 틀리지 않고, 괜찮은 존재다. 언제나 자기자신은 비련의 주인공이고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 존재다.
하지만 적팀이 되어 객관적인 상황을 볼때, 한발자국 떨어져서 보았을 때 사실이 드러날 뿐이다.
자기객관화란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내가 아닌 적팀을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객관화란 무섭고 우울한 것만이 아니다.
적팀보다 우리팀이 약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 자체만으로 새로운 전략을 사용할 수 있다.
기존처럼 정면돌파가 아닌 우회로를 이용해야겠다는 확신을 가져오기에 전혀 다른 판을 생성한다.
적을 알았기에 속임수를 사용할 수 있다.
그때부터 속임수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속임수라는 것은 기존의 판이 완전히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판에서 게임이 벌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약하다고 규정된 판에서 벗어났기에 더이상 약함이 없어지는 마법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원하지 않는 것, 꿈이 없는 것,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은 사실 모두 이걸두고 하는 말이다.
가만히 방에 누어있으라는게 아니라, 내가 아닌 적팀이 원하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추상적이고 영적이라고 해서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적과 내가 있는 전쟁같은 곳에선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인다.
열심히 하지 않고 속이는 것이 가장 높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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