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g의 구울 수사관은 구울의 힘을 이용한 '쿠인케' 라는 무기를 사용한다.

인간으로써 적인 구울을 죽이기위해 그들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구울 수사관은 구울을 부정하고 처리해야할 적으로 간주한다.

그들의 행동은 나를 죽이는 적에 대한 '분노'로 압축할 수 있다.

구울 수사관이 아무리 시크하고 멋있는척, 쿨한척 표정을 지어도 그들의 행동 자체는 분노라는 한계선상에 있기에 그 이상을 올라가지 못한다. 이부분은 애니메이션보다 실사판 영화에서 잘 표현되었다.

 

 

 

 

하지만 카네키는 구울의 무기를 사용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구울 그자체가 된다.

구울 그자체가 됨으로써 사실상 표정은 무표정에 가까워진다.

분노할 대상이 더이상 없다. 나자신이 그 사악하고 무서운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더이상 외부에 있는 적에대한 '분노'가 아닌 나자신의 문제로 모든 것을 돌릴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더이상 적이 없는 상태가 됐을 때 그 상태를 '각성' 이라고 표현한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져서 적이 없는게 아니라, 그저 적이 됨으로써 없어지는 메커니즘이다.

 

그것은 단순한 자기반성과 같은 '다음에 더 잘해야지' 라는 마음이 아니다.

적이 이미 나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뭔가 더 노력하고자 발버둥치는 개념이 아닌 

단 한순간에 전환되는 개념이다.

이미 있었던 목적지를 향해 더 빨리 달리고, 더 높이 달리는 것이 아닌 전혀 다른 목적지로 방향을 틀었을 때이다.

노력과는 다르게 방향을 트는 것은 너무나도 쉽다. 지금 이순간 할 수 있다. 마음의 감옥에서 나올 수 만 있다면 말이다.

각성은 이렇게 [자기자신의 잘못을 깨달음] 이라는 뜻이다. 한순간의 깨달음이다.

카네키처럼 굳이 구울의 장기를 이식 당하지 않더라도 사실상 인간이라면 내가 증오하는 적의 부분이 나에게도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한다.

 

 

감정적으로 화를 불러일으키고, 노력을 위해 땀을 뻘뻘 흘리거나 얼굴이 상기되는 빨간색의 상태는 레벨이 낮다.

나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모든 책임을 돌렸을 때 나올 수 있는 감정이다.

뭔가 초연하고 침착한 하얀색의 상태인 각성이 가장 높은 단계의 레벨이다.

분노의 힘을 당연한듯 한부분으로 가지고 있다. 분노의 단점을 표출하지않으면서 장점만을 가지고 있는 상태이다.

빨간색의 빛은 무지개의 첫번째 빛인 만큼 정말 강력함을 보여줄 수 있겠지만 모든 빛(아군과 적군, 모든 이원성이 합쳐진 상태)이 모인 하얀색의 상태에게 상대되지 못한다.

 

 

분노의 단계는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누구나 거쳐야하는 단계가 아니다. 

순수 -> 분노 -> 각성 의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순수 -> 각성의 상태로의 전환만이 오히려 더 가능하다.

순수의 상태에 있어야만 자기자신의 잘못임을 더 사무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분노와 각성 모두 생존을 위한 중요한 스킬이다.

분노가 레벨이 더 낮지만 그 분노의 단계에서도 '적의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필요하다.

내 외부에 있는 가장 증오스러운 적의 무기를 사용하는 단계는 너무나도 최소한의 선이다.

생존하기 위해선 적어도 적을 알아야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적이 되어야한다.

카네키가 리제를 먹어치웠듯 적의 극단점을 없애고, 올바른 부분만을 가져오는 '뛰어넘는' 행위가 곧 각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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