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돈의 기원은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내용으로
누군가의 이빨을 부러뜨리면 원래는 똑같이 이빨을 부러뜨리는 형벌을 당해야 하는데 그것 대신 왕이 증명하는 돈이라는 혜택을 피해자에게 주는 것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돈이 많을수록 (이빨을 많이 부러트려졌으면 ) 남의 이빨을 그만큼 많이 부러뜨릴 권리가 생기는 것이다.
정말 합리적이다.
이빨이 없는 사람이 누구의 이빨을 부러뜨린 것이면 복수 할 수도 없을 텐데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돈이다.
돈이라는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같은 레벨의 피해를 상대방에게 주지 못하는 불균형적인 상태일 때 복수심은 증폭되어 더욱더 큰 범죄나 데미지를 가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정확히 같은 데미지로 교환가능한 공인된 수단을 만들어 낸 것이다.
물물교환의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피해와 생존에 대한 보상으로서 주어지는 것.
그렇다면 돈을 번다는 건 무엇을 뜻할까?
그것은 피해와 폭력을 많이 당한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복수하지않고 공인된 보상을 받아들임으로써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다.
돈이 많을 수록 남들에게 이빨이고 귀고 팔이고 뭐고 온몸을 다내어주었다는 증거이다.
한마디로 합당한 대가를 받았으니 피해받은 것을 용서했다는 뜻이다.
매일 정신적 강간을 당하는 현대 직장인들의 모습이 이제야 당연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자산가들은 그만큼 많은 피해를 받았고 그럼에도 복수하지 않고 있는 상태 (권리는 가지고 있지만) 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거대재벌들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일지도 모른다. 그만큼의 비용을 내고 괴롭히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만큼 멍청할지도 모른다. 온몸을 다 내어준 상태니까. 자신에게 조금의 보상도 허용하지 않은 상태라고 볼 수도 있으니까 나자신이라는 정체성이 없는 방향으로 갈수도 있다
돈이 없으면 생존하지 못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생존에 위협을 받은 대가로써 돈이라는 것이 탄생했는데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하는 모순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피해를 받을수록 돈이 늘어나는 메커니즘이어야하는데 오히려 더 가난해지고 피해자가 더 손해보는 세상이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생존에 위협을 받지 않아서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위협과 피해를 받고도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생존에 대한 위협은 받는다.
그런데 그 이후에 함무라비 대왕에게 가서 그 사실을 보고하고 돈을 받아오기만하면 되는데, 그걸 하지 않고 복수를 계획하는데 모든 머리와 에너지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내이빨을 부러뜨린 놈의 이빨을 부러뜨리기만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돈이 생기질 않는다.
마음에서부터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마음들을 통해 다음을 기약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닌 술먹고 잊어버리고 끝내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가해자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가해를 한만큼 돈을 써야되니까 돈을 벌 수가 없다. 용서하지 않는한 피해자는 가해자와 다를 바가 없다. 잠재적 가해자가 된다. 완전히 똑같아진다.
돈이란 이런방식으로 공짜로 내어줌으로써(용서) 오히려 얻을 수 있다.
모든것을 다 내어주고 갈기갈기 찢어졌을 때 그 상태를 받아들이면 비로소 돈이 생긴다.
용서란 도덕적 과정이 아닌 철저한 교환 과정이다.
피해를 당할 수록 내가 그 피해를 돌려줄 권리 혹은 그만큼의 힘과 미래가 생긴다는 것을 알 때 비로소 피해에 무던할 수 있다. 어떤 반성과정이라던지 경험에 의한 통찰력이라던지 더 성공하고자하는 욕망이 생긴다던지 해서 보상이 이루어진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만약 고통이라는 형태를 띄기 때문에 돈을 받을 권리는 얻지만, 어떤 고통은 이상하게도 오히려 나를 기쁘게 하는 고통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마조히스트 처럼 고통이 나를 오히려 즐겁게 만드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책 안티프래질에서 나온 히드라 예시처럼 목이 잘릴때마다 2개가 생겨나는 메커니즘이 있을 수 있다.
이빨은 30개인가 주고나면 더이상 줄 것이 없지만 다시 생겨나는 무언가를 줄 수 있다면 무한하게 돈으로 교환할 수 있다.
나에게 있는 것들 중 무한성은 무엇인가?
돈이라는 것이 고통받아야만 하는 것이라고 해서 나를 갉아먹으며 하나밖에 없는 것을 내어준다는 것은 미친 생각이다.
나에게 있어서 무한하고 많은 것을 내어준다는 개념이 성립하는 순간 자본이 무한하게 증식하고 실력이 무한하게 쌓이는 루트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용서는 무조건 하는게 아니다.
용서할 일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용서할 수 있는 부분에서만 머물러야한다는 생각에 도달한다
그러니 직업이라던지 개성이라던지 한두가지의 특성이 잡히는 것이다.
아무거나 다 내어주는게 아닌 내어줄 수 있는 것을 내어준다.
용서할 수 있기에 용서할 수 있다.
어찌되었던 다른사람에게 무언가를 내어줄 때에만 미래의 가능성을 보장하는 돈을 벌 수 있다.
용서한만큼 돈을 번다.
돈을 벌지 못한다는 건 내어줄 것이 더이상 없다는 뜻이다.
결국 담당하는 고통이 무엇인가이다. 잘 버티면 거기서 돈을 번다.
몸을 잘 다루고 견디는 사람은 블루칼라직업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
왜 블루칼라 직업들의 소득은 한계가 있을까? 몸이라는 것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정신적 감정적 고통은 몸보다 쉽게 회복되기 때문에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프로그래머들이 돈을 많이 벌게되는 이유도 그렇다. 지식은 쌓이는 경향이 있고 응축되어 지속가능하다.
물론 거기에도 당연히 한계가 있다.
사업가들과 투자자들은 어떤 고통을 견디는걸까?
거기에는 지식을 습득하는 고통같은것이 아니라 오로지 생존이 왔다갔다하는 종류의 고통이 있다.
그 고통은 정말 강하지만 무한성을 가지고 있다.
존재 자체에 대한 고통은 보이지 않고 한계가 없다. 밑으로 무한하게 갈 수 있는 만큼 위로도 무한하게 갈 수 있는 종류의 고통이다.
몸 -> 감정 -> 논리 -> 영혼 의 레벨로 확장된 마지막 부분이다.
영적인 부분 즉 생각적인 부분은 단 한번에 회복가능한 무한성을 지니고 있다.
생각하나만 바꾸면 곧바로 전환된다.
상상속이나 꿈속에서 순식간에 이동되고 변화하는 것처럼 피해받은 피폐한 상태에서 마법처럼 회복가능하다.
몸이 질척거리는 바다속이라면 감정과 논리는 하늘이다. 영혼은 우주이다.
오른쪽으로 확장될 수록 저항이 적고 빛이 굴절되지 않는다.
저항이 적은 곳에선 계속해서 자라난다.
마치 개발자 모드의 게임처럼 규칙이 없고 자유롭기 때문에 언제든 돈과 교환가능한 몸체가 생성된다.
신적인 무한함 속에선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다.
모든 것을 내어줘도 다시 자라난다.
존재를 부정당해도 전혀 다른 존재로 변화하면 된다. ( 인터페이스 )
사업이나 투자에 실패해도 또다른 아이디어에 의해 시작하면 된다.
몸으로 하는 일은 실패해서는 돈을 받을 수 없고, 감정은 폭발해선 안되고, 지식적인 부분은 진리에 가까워 변화할 수 없지만
모든 사람의 마지막 테두리에 있는 영혼적인 것에선 모든 것으로 변화 가능하다.
변화할 때마다 스택이 쌓여 남는다.
어떤 경험에 대해 기억이 남는 것처럼 어떤 것이 사라진다해도 무언가가 남아있다.
변화할 때마다, 채널을 돌릴 때마다 복리적으로 이득이 증가한다. 돈이 증가한다.
게임 캐릭터가 죽은뒤 다시 생성되듯 돈으로 교환할 몸과 마음이 계속해서 생성된다.
결국 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돈을 벌 수 있다.
용서란 곧 용서할 수 있는 상태로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던 고통이 -> 오히려 도움이 되는 상태로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 변화한다면 용서가 성립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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