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함정이 있다.

그것이 가능하도록 완벽하게 허용되었지만, 그것을 행하면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무서운 함정.

바로 그 유명한 '끌어당김의 법칙'이다.

 

에덴동산에 있는 선악과다.

나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여 특별히 좋은 것을 고르는 분별심.

자기가 낙원에 있는 줄도 모르고, 바깥에 있는 것을 끌어당기려고 하는 기만이다.

 

 

정말 무서운 점은 끌어당김 법칙이 완벽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

 

'골라봐.  뭐든 줄게' 

그리고 실제로 준다.

 

근데 그것을 가지고 기뻐하는 순간, 잔인하게 잡아먹히는 어린이 공포만화에 나오는 벌벌 떨리는 장면이다.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 어떤 만화에서 크리스마스 산타귀신이 실로 목졸라 죽이는 장면이 생각난다.

저 안고를게요 한번만 봐주세요 ㅠㅠㅠㅠ

 

 

 

센과치히로 마지막 장면처럼, 고르면 죽는 너무나도 잔인한 게임이다.

세상에는 이 돼지 중에 하나를 골라서 공중제비돌며 멋있는 척 하는 광대들과 파충류들이 널려있다.

갑작스레 산타귀신에게 잡혀가고, 또다른 돼지가 나와서 그자리를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차지하며 또다시 공중제비를 돈다.

와 저 사람은 실제로 해버렸네. 존나 멋있어.

그것을 부러워하며 나도 빨리 돼지를 골라잡고 싶다는 충동이 매일같이 이루어진다.

 

 

왜 우리는 선악과의 유혹을 견뎌야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능력을 거절하고 능력 자체를 퇴화시켜야할까?

신은 뭐하러 선악과라는 함정을 만들어둔 것일까?

 

 

 


 

가설 1. 신은 원래 악신이다.

일부러 가둬놓고 선악과를 둔다.

선악과를 따먹기만을 기다리고, 따먹는 순간 잡아먹으면서 즐거움을 느끼며 낄낄 웃는다. 

낙원에서 지옥으로.

사실 신은 거기서 느껴지는 기만적인 감정을 느끼기위해 인간을 사육하고 있을 뿐이다.

일종의 엔터테이닝 사업이면서 동시에 축산업자이다.

 

가설2. 그냥 다른데 사용하려고 심어놓은 것 뿐인데 인간이 와서 먹어버린 것 뿐이다.

즉 다른 곳에 사용하려고 어쩔 수 없이 심어둔 것 뿐인데, 인간이 와서 먹어버렸으니 처벌을 받는 것 뿐이다.

 

가설3. 낙원을 만들기위해서 어쩔 수 없는 교환과정에서 파생된 메커니즘이다.

낙원을 존재시키기위해서 별수없이 만들어야만 했던 것일 수 있다.

인간이 배설을 해야하는 메커니즘이 반드시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인풋 아웃풋이 될 수 있도록 설계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설4. 진정한 낙원을 이해시키기 위한 선한 의도로 만들어졌다.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에서, 뭐든 하지 않게 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만큼의 에너지를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럼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만약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에서,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그것은 절망이나 체념의 감정이 만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발적인 선택을 한다면 그것은 절대적인 희망과 신념이 된다.

왜냐면 정말 그 어떤것보다, 지금 가지고있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자체가 훨씬 커진다.

바깥이 크면 클수록, 바깥을 선택하지 않고 내부를 선택했을때 그만큼의 알파적인 에너지가 달라 붙는 것이다.

신은 무한할정도로 크게 잔인한 우주를 넓혀놨다.

 

 

그렇기에 가장 좋은 것을 먼저 던져줘버린 것이다. 느끼지도 못할정도로.

바깥에는 쓰레기들로만 가득 채워놓고 말이다.

결국 굉장히 위험하긴하지만, '가장 좋은 것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투자하는' 이상적인 상태를 만들 수 있는 것이므로

신은 우리를 사랑하기에 이런 환경을 세팅했다고 볼 수 있다.

 

 

 

 


 

 

유바바는 왜 돼지들을 모아놓고 거기서 부모를 고르라고 양심 뒤진 퀴즈를 치히로에게 낸걸까?

보내주기 싫다는 것이다.

절대 보내주기는 싫지만, 최소한의 양심인 정답이 있기는 있어야하는 규칙만큼은 지켰다.

그래야 게임이 성립되기는 하니까.

가장 기만적인 극한값의 정답을 맞췄을 때.

보내줄만한 정당성, 체면도 확보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치히로가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유바바와 제니바라는 쌍둥이 마녀가 등장하는 것처럼

신은 선한 신임과 동시에, 악한 신이라는 두가지 면을 모두 갖추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가설 1이 정답임과 동시에 가설 4도 정답이다.

 

 

그렇다면 더욱더, 이 유니버셜한 룰을 절대적으로 지켜야만한다.

악신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선한 신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선택하지 않는 선택을 해야만한다.

끌어당김 법칙을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오직 최초의 비자발적 선택인 디폴트값을 유지해나가는 것만이 정답이다.

 

다시말해,

바깥의 그 무엇도 아닌, 나를 선택하는 것이 우주적인 철칙이다.

 

역으로 말하면 남의 것을 한순간도 탐하지 않는 것이다.

 

 

 

 

 

 

지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만적인 감옥에 갇혀있다.

알라딘이 지니를 자유롭게 해주자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릴정도로 격하게 인간이 되고싶었던 것이다.

뭐든지 할 수 있는 신의 가장 마지막 목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자기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었다.

 

알라딘은 지니를 자유롭게 했는데도 자스민 공주와의 사랑과 왕국을 얻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우정도 얻고 사랑도 얻는 방법을 택하는게 좋지 않을까?

아니 사실은 지니를 자유롭게 했기 때문에 비로소 그 모든 것을 얻었을테지만.

 

알라딘이 보기에는 '가난' 이라는 것이 자스민 공주가 보기엔 '자유'였다.

알라딘은 그 속임수에 속지않고 자기자신인 가난을 택했고,

선택하자마자 그 가난이라는 개념은 어떠한 딜레이도 없이 동시에 양자 도약하여 튕겨져나와 '자유'로 변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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