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애들이 뭐든지 단어를 요약해서 줄이는 습관을 가지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다.
말이라는 건 애초부터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임에도 거기에 추상성이나 모호함을 덧입히는 과정은 매우 쓸모가 없다.
예를 들면 '컴퓨터용 싸인펜' 이라고 풀 네임으로 말하면 이 펜이 나중에 컴퓨터가 인식하도록 하는데 쓰이겠구나 라는 전체적인 용도와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싸인펜' 이라고 명확하게 이름이 있기 때문에 싸인을 하는데 용도를 변경해서 쓸 수 있고, 그것을 '볼펜'으로 바꾸거나 하는 라임과 연계를 맞춰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하지만 그냥 '컴싸' 라고 해버리면 시험이라는 것의 격을 낮추고 족밥으로 보는 느낌이 들며, 마치 시험 이외에는 어디에서도 써서는 안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무의식적으로 '펜'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그것을 어딘가에 쓸 수 있겠다는 상상이 들텐데 말이다.
또한 겨우 한글자의 중의성 때문에 잘못 들으면 야하고 망측한 생각도 들 수도 있다.
'싸' 라는 글자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은 너무나도 많다.
길이 너무많으면 헷갈리고 악마의 길로도 갈 수 있다.
음침하고 더러운 악마들이 그러한 구멍을 통해 소환되고 강령되는 것이다.
약어를 쓰면 약해지는 법이다.
프로그래머들은 변수명을 정할 때 일부러 길고, 명확하고, 자세하게 쓰려고 노력한다.
membershipManagementIdFromThirdBoardInSecondTable 진짜 이런식으로 쓰려고 하는 문화가 있다.
함수명이나 변수명에 그것이 어떤 기능을 위해 왜 만들어졌는지 정확하게 드러나야한다.
대충 줄여서 v1, v2 이따위로 쓰면 조금 빨리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나,
버그가 생기거나 다른 프로그래머들에게 보여주거나, 내가 나중에 봤을 때 전혀 모르겠고 햇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힘들여서 길게 쓰는 거다.
꿀떡 따먹기위해서 사는게 아니라, 무언가를 더 잘되기위해서 나중을 위해서 더 정성을 들이는 사람이 훨씬 쉽게 간다.
세상은 쉽지 않고 혼란속으로 가득하기에, 명확한 지칭을 가진 언어는 그 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인식의 토대가 된다.
세상 좋은 말들은 다 누가 닉네임으로 쓰고있고 회사명으로 쓰고있다.
이런 세상에서는 차라리 일본 라이트노벨 시장처럼 제목을 매우 길고 복잡하게 쓰는 것이 훨씬 좋은 문화다.
"가끔식 툭하고 러시아어로 부끄러워하는 옆자리의 아랴 양"
"옆집 천사님 때문에 어느샌가 인간적으로 타락한 사연"
이딴게 책제목인가 싶지만
사람들에게 어떤 생각과 상상을 하게하고, 누가 이것을 읽었으면 좋겠는지와 같은 타겟을 영점조절하기 위해서 훨씬 올바른 태도다.
배달의 민족은 매우 싫어하는 앱이지만 이름자체의 인식력이 엄청나다. 고유함을 확보할 수 있다.
두글자 세글자의 멋진 회사명보다는 부끄럽고 번거로울 수도 있으나, 이러한 설명적인 브랜드명이 앞으로 많이 늘어나야한다.
두글자 세글자의 멋진 회사명이라는 아무런 뜻이 없는 추상성에 숨어서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배달의 민족은 정말 배달에 집중할 무의식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으나
사랑 용기 박애 이딴 추상적이고 좋은 이름을 쓰려고하는 회사들은 정말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무서운 정당성을 스스로 확보할지도 모른다.
사랑하기 때문에 개 팰수도 있고, 박애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정신승리 할수도 있다.
말을 줄일 바에야, 차라리 말을 많이하는게 낫다.
줄일 때 줄이더라도, 우선은 공식적이고 보편적으로는 긴 것을 주로 사용해야한다.
자기자신을 그냥 '경력 15년의 댄서'라고 소개하는 사람의 속을 까보면
'8년간 쳐놀다가 8년은 하루에 1시간만 댄스연습을 하고 하루에 4시간을 술처먹는 경력 15년의 사람'이라고 드러낼 수도 있다.
전자는 뭐든지 해줄 수 있는 위대한 댄서라고 보이지만, 후자는 그냥 개등신이다.
그러한 객관화되고 정말 자세하게 자기자신이나 남을 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남들보다 좋은 점이 있다면 그것을 드러내서 곧장 다른사람에게 인식 시켜줄 수 있어야한다.
포장하고 숨겨서 안보여주는게 아니라
속에 있는 것을 싹다 긁어모아서 나열시켜야한다.
그래야 정말 객관적으로 인식이 되며
다른 것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명확하게 이해가 간다.
그러한 투명한 것이 아니라면
어떤 것도 먼저 믿어서는 안된다.
특히나 한글은 잘 사용하지 못하면 너무나도 위험하다.
한자 같은경우 찾아보기만하면 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있기 때문에 이해할수있지만
한글이라는 것의 추상성은 정말 어디로든 날라다닐 수 있기 떄문이다.
우리나라야말로 길고 명확하고 자세히 말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되어야한다.
그렇게 하기위해서 최적화된 언어이기 때문이다.
어린애들이 어짜피 입을 꾹 닫고 핸드폰이나 만지는거보다
불편하더라도 '컴 퓨 터 용 싸 인 펜 챙 겼 어?' 라고 정확히 워딩을 하면서 대화를 해나면 좋겠다.
그게 더 재밌고 서로 뭔가 장단을 맞추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긍정적인 기제로도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뚝 솟은 산의 정상을 비롯해서 보잘것없는 작은 언덕까지, 조부모의 농장 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지형들에는 이름이 붙었다.
그 이름들은 매우 설명적이고 장소에 잘 어울린다. 이와 같은 길잡이들의 용어는 길을 잃기 쉬운 지역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었다.
설명적인 이름은 심상을 형성하게 해준다.
'잔디가 덮인 언덕' 이라는 이름만 봐도 어떤 모습인지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지명을 알면 길을 떠날 수 있다.
거미줄처럼 얽힌 지명은 "방향성"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끌어낸다.
"뚜껑이 없는 용기에 물을 담으면 진흙이 들어간다"
"가는 미루나무가 있는 둥근 빈터"
"큰 산버들이 굽이를 따라 휘어있다'
같은 "공들여 만든 이름들(대담한, 시각적인, 좋은 것을 연상시키는)은 선조의 목소리에 시적인 힘을 실어준다.
- <길잃은 사피엔스를 위한 뇌과학> 마이클 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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