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하나의 빈 공간을 만든다.

병은 나를 더럽히고 끝에 끝까지 놓아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람은 거기에 대응하는 해결책을 강구하고 그에 알맞게 살아간다.

 

나에게 있는 허리디스크라는 병에 대한 두려움이 곧 걷기와 플랭크라는 허리운동을 하게 만든다.

내가 플랭크를 하는 이유는 내 의지와는 크게 상관없이 계속해서 할 수 있게 된다. 병이라는 비어있는 공간 덕에 플랭크라는 무기가 채워질 수 있고 어떠한 부작용도 나오지않으며 계속해서 지속가능하다. 원인과 결과가 완벽히 연결되어 있다. 오히려 병으로인해 건강해지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하지만 내가 팔굽혀펴기를 하는 것은 어떠한 병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 행동의 효과는 당연히 좋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어떤 것과도 연결되지 못한다. 조금 잘한다고해서 무작정 하다보면 부작용에 시달릴 뿐이다. 관심이 없기에 천천히 관찰하지않고 빨리 끝내버리고싶은 안달이난다. 그렇기에 아무런 감정도 없고 효과를 즐기지도 못한다.

정말 알기쉬운 몸에 대한 병조차도 이걸 계속해야하는지 나에게 맞는 무기인지 자세히 보지 않으면 햇갈린다. 하물며 다른 정신적이거나 사회적 병들은 그 상보관계가 무엇인지 더욱더 알 수가 없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아름다움도 병와 죽음과 연결된 상보관계에 있다.

먼저 병에 대해 알아야만 그에 걸맞는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나에게 병이없다면 어떤 알맞는 무기도 장착할 수 없다. 자기 병에 대응되는 어떠한 일도 해선안되고 할 수도 없다. 나의 병이 곧 나를 만드는 것이다.

병은 나를 끝에 끝까지 더럽힌다. 그것에 관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을 주고 수많은 것을 고민하게한다. 수많은 해결책을 시도해보게하며 수많은 시간을 지속하게 한다. 그렇기에 그 병에 대한 해결책은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다.

직업인은 힘들다. 진상고객부터 시작해서 말도안되는 문제들이 생겨나고 힘이 빠지게하고 에너지를 빼먹는다. 프로의 영역이다.

하지만 이미 그 병을 앓아본 사람에겐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다. 이미 스스로를 끝에 끝까지 괴롭혀본 그 경험은 진상고객 한두명따위에 무너지지 않는다. 강하다. 지속 가능하고 그어떤 것이라도 받아줄 수 있다. 이미 해보고 받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즐겨버린다. 재미로 하고 공짜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기도 한다. 이미 가지고 있고 이미 풍부한 것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영역에 프로라는 개념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감사를 느낀다. 한사람이 수만명을 상대할정도로 영향력이 커진다.

그만큼 병은 한 사람을 한사람 이상으로 만든다.

그 병이 큰 만큼 아름다움도 커진다.

 

아름다움은 조작할 수 없다.

정확히 병의 크기, 병의 종류, 병의 세기만큼의 아름다움만 달성가능하다.

직업과 진로는 분명히 정해져있다. 내가 해야할 습관도 이미 정해져있다.

그것을 하냐 마냐만이 자유의지이다. 어느정도까지 달성하냐만이 개인의 문제이다.

 

슬픔은 극복하는게 아니다. 없던 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끝까지 같이 살아가야할 기억이다.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죽는다고해서 없던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 기억으로 인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자. 그렇게 한다면 죽음은 삶으로 이어진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라이프코리아트위터 공유하기
  • shared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