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치유의 최첨단 알고리즘은 이렇다.

상처가 생긴다. -> 상처를 고마워한다.

 

이런 누구나 아는 말 왜 쓰고 있는지 욕할 수도 있지만 상처가 어떻게 생기는지, 그리고 어떻게 치유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이 어떻게 연결되는 지까지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적어본다. 

이렇게 간단한 것도 나는 몰랐고 이해하지 못했다. 간단해 보이지만 저 화살표를 대부분 모르고 있다. 수십억명이 나와 같다고 생각한다. 

 

 

1. 의외성으로 인해 상처가 생긴다.

다른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을 사소한 것, 내 능력범주를 넘어선 오지랖을 부리다 상처가 생긴다.

오지랖을 부리는 이유는 그때 당시의 나조차 알기 힘들다.

하지만 벌어져선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나, 꼭 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강박에 의해 사람은 이상한 행동을 한다. 일부러 조작하려고하거나 함정에 빠지거나 상대하지 않아야할 것을 상대해버린다.

그 이유의 근본에는 두려움이 있다. 생물은 가장 큰 두려움에는 오히려 마주하는 특성이 있다. 너무 두려워서 움직이지 못하거나 두려움의 대상으로 시선을 옮기고 집중한다. 자기에게 가장 결핍된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에 먼저 움직이려하고 과잉반응을 하게 된다. 그만큼 두려운 상황에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상황은 정해진 운명과 환경이다.

생각은 돌아가지 않고 몸이 알아서 움직여 상처받을 상황을 일부러 만들어낸다.

상처를 끌어당긴다. 

문제나 상처는 항상 왼쪽으로도 안되고, 오른쪽으로도 안되는 이중 구조에 의해 벌어진다.

어떻게 했어도 내 몸을 막을 수 없었던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왠지 어떻게 했으면, 그러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게 된다.

자기자신이 밉고 슬프다. 어이가없다. 나조차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절망한다. 눈물이 흐르고 상처로 자리잡는다.

 

 

2. 상처를 붙잡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을 고마워한다.

 

보자.

앞서 본 것처럼 상처는 내 몸이 알아서 움직였기에 벌어진 일이다. 그 몸이 알아서 움직인 근본적인 이유도 나로 인해서 벌어진 것이 아니다. 환경과 운명에 의해 모든것이 벌어지고 있다. 내가 그것에 무한한 고통받는 이유는 그것을 다른사람들은 쉽게 막는 것 같은데, 왜인지 나는 막을 수 있는 힘이 없고 나약한 존재인 것 같다는 이유이다. 나는 부족하다.

가만히만 있어도 언젠가 내 몸이나 생각이 굴러가면서 또 그 상처와 두려움을 만들 것이란 걸 알기 때문에 미친 듯이 내가 싫은 것이다. 내가 너무 부끄럽고 허접하고 죽고 싶다. 남들과 다른 나는 살아갈 이유가 없다.

 

어떤 특정한 빨간 벽이 있다.

나는 그 벽만 인식되면 갑자기 모든 기능이 정지되고 전력질주로 그 벽에 돌진하는 것으로 프로그래밍이 되어있다.

내가 그 벽을 뚫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계산되지 않고 쳐박았던 어린 날들의 상처가 너무 두려워서 빨간 벽이 전혀 없는 세상으로 가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 벽만 있으면 나는 또 상처를 입기 때문이다. 굉장히 합리적이며 그런 선택을 해도 누구도 뭐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는 엄청난 것이다. 내 에너지는 단 하나도 쓰지않고 생각하지도 않아도되는 인공지능 자율주행이다.

게다가 내 능력범주 따위는 실행 조건에서 배제된다. 내가 잘하던 못하던 그것이 실행하고 굴러가버린다는 뜻이다. 그 상황에서는 엑셀러레이터가 그냥 확 밟혀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있는 테두리를 넘어선 것에 접근할 수 있는 뜀틀이나 개구멍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실패와 상처는 반복된다. 왜? 나는 그 빨간 벽 비스무리한 것만 봐도 돌진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내가 가장 많이 시도해보았고 안되는 걸 가장 확실하게 알고 있는 바로 그것 만큼은 벗어나려하지만 이 인공지능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가장 포기해야할 이유가 많은 곳이 오히려 가장 붙잡아야할 곳이라는 것이다.

그곳은 자율주행차에 탑승한 사람처럼, 인공지능을 다루는 프로그래머처럼 그냥 탑승하기만 하면되는 최첨단 기술과 같다.

내가 생각도 감정도 가지지 않고있어도 알아서 저 멀고 높은 곳까지 알아서 가버린다. 

 그렇다면 차라리 거기를 벗어나려고하거나 그 돌진을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만드는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공지능을 타버리는 것이다. 몽골 제국이 말을 타서 이용해버린 것처럼 그것에 탑승해 내 것처럼 부리는 것이다.

말은 달리고 돌진한다. 소처럼 농사를 짓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지만 자동으로 달리는 기능은 가지고 있다. 인간의 몇백배는 빠르고 멀리 갈 수 있다. 인간의 힘 그 이상을 낼 수 있다. 말을 타고 그 방향을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을 지배할 수 있다면 그 힘은 말이 아니라 말 + 인간의 것이다.

 

어짜피 몸이 알아서 움직일 테니, 내가 해야할 일은 그 빨간 벽을 부술 수 있는 전차로 개조시키고 무기를 장착하는데 집중한다.

몸을 움직이는 에너지는 전혀 안써도되니 나는 그안에 타서 해야할 일을 하는 것이다. 말을 탄사람은 달리지 않아도 됨으로써 말도안되는 힘을 얻는 것처럼. 말이나 차는 운전을 해야하지만 자율주행차는 운전도 안해도 된다. 방향까지 정해져있다. 최고의 제품이다. 알아서 데려다 주는 전쟁터에서 싸울 수 있는 능력만 키우면 된다.

내가 그쪽으로 흐르는 것을 막지 않고 운명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 그 상처를 겪지 않기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그렇다. 자동으로 미친듯이 수련한다. 연습한다. 반복하고 지속한다. 벽을 뚫을 힘을 가지도록 된다. 완전 자율주행이다.

나는 그냥 가만히 있는다. 그리고 그 상처를 만들어내는 상황에 적절한 능력만을 키운다. 어짜피 자동으로 그 상황에 던져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 능력범위를 넘어서서말이다. 그러니 나는 그 어떤 대단한 스승이나 전문가의 조언이나 채찍질도 필요없다. 

왜? 내가 이미 그 상처가 얼마나 아픈지 알고, 그 상처를 겪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찢어지도록 잘 알고 있다.

알아서 그 상황이 와도 걱정되지 않을 정도로 능력을 쌓는다.

마치 설거지를 할 때 무심한 바로 그 마음이다. 아니 그냥 당연히 하는 것이다. 어렵던 이해안가던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이걸 왜 해야하지를 따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상인 그것이 또 올것이라는 것을 알며 그것을 안했을 때의 고통도 알고 있을 때이다.

 

상처는 이러한 알고리즘으로 무한한 능력을 쌓을 수 있다.

 

그 상처를 받아들이고 활용할 때 인간은 강해질 수 있다.

주식이 50% 하락하는 상처는 2년뒤 10000% 상승한 시점에서 진짜 귀여울 뿐이다. 하지만 가만히 두면 평생 상처이다.

실제로 그 상처에 들어가 그것을 중첩시키고 덮어씌우는 작업.

가시가 찔리더라도 장미를 얻는 그 작업에 다가선 사람만이 강해질 수 있다.

 

 

<주의점>

 

단점과 상처를 착각해선안된다.

나는 축구를 정말 개발처럼 못하지만 축구를 못하는 것에 어떠한 상처도 없다. 못하는 것과 상처는 다르다.

결정적 차이점은 앞서 본 것처럼 내가 그곳으로 계속 움직이느냐 움직이지않느냐. 혹은 말도안되는 사건이 벌어진 적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이다. 서사성의 여부, 스토리가 있냐 없냐의 차이다. 일부러 단점을 줄이려고하거나, 단점을 극복하려는 행태는 오히려 상처를 회피하려는 허접한 행태이다.

누구나 못하는 건 있지만 그것을 상처라고 생각하는 건 제각각의 마음이다. 오히려 상처는 그래도 크게봤을 때 조금은 자기가 할만해보이는 분야에서 나온다. 

단점과 상처는 완전히 다르게 대우해야한다.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쓰레기 조언은 듣지 말아야한다. 나는 오직 내 상처만을 받아들일 수 있다. 단점을 극복하고 잘해지는 것 따위는 관심도 두지 말아야한다. 단점은 있는그대로 나를 만들어가는 소중한 것이다. 가만히 놔둬도 된다.

 

상처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다. ( 싸워서 이겨내는 것, 더이상 적이 없는 것처럼 게임이 끝나는 것 )

상처를 받아들이고 품어냄으로써 나의 것이 된다.  ( 계속해서 내 능력 이상에 돌진하는 나를 받아들이는 것, 게임이 끝나지 않는 것 )

그렇게 될 때 자율주행 시스템인 나자신을 고마워할 것이고 그것을 알려주는 인디케이터인 상처가 더 이상 나쁜 기억이 아닌 좋은 기억으로 바뀐다. 상처는 기억 속에서 계속해서 작동해야한다. 기억할만큼 가까이 있어야한다. 그것이 자율주행 전기차의 배터리같은 에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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