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로 태어났다고 억울해하는 사람은 사실상 인생의 질, DNA의 질, 환경의 질을 따지는 것이다.

퀄리티를 따지는 것이다. 품질을 따지는 것이다.

질을 따지는 것은 사실 매우 고정된, 완성된 것들 즉 물건에게나 적용해야할 사고방식이다.

즉 나는 아무것도 안하겠다 라는 뇌사상태 선언이다.

 

인생이나 생명은 지속되며 변화한다.

뇌는 가소성이 있기에 당연히 변화한다.

그렇기에 질을 따지는 것은 불가능하고 오직 양의 문제로 돌아간다.

 

그래도 양심이 있는 보통 사람들은 인생의 질 자체를 바꾸고자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아닌 모든 것은 내가 될 수 없는 법이다.

변화하려고 한건 올바르지만 결국엔 잘못된 일이다.

 

 

내가 짧고 약하던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양으로 늘릴 수 있기 떄문이다.

내 방식으로, 내몸으로, 내가 가진 것으로

양으로 승부해야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것으로 승부를 해야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다.

 

질적으로는 단하나도 바뀔 필요가 없다. 

사악한 보수적인 생각을 적용해서 절대로 지켜야한다.

나는 완전히 나다. 내 몸을 버려서는 안된다.

 

양적으로는 무한한 변신이 필요하다.

미친듯이 양을 늘리는 진보적인 생각을 적용해야한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라이프코리아트위터 공유하기
  • shared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