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은 완전히 잘못된 감정이다.

수치심은 느끼는 순간은 내면의 살인자가 나를 죽이기위해 칼을 들이민것이다.

나는 그 장면을 보았을 땐 당연히 그상대를 죽여야하고, 경찰에 신고해야한다.

 

화학작용이 잘못되었을 때 요상한 기체가 발생하듯 

수치심이라는 것은 양쪽 측면을 보지못하고 한쪽 측면만을 바라보았을 때 발생하는 이상기체와 같다.

 

내가 부끄러운 상황에 처했을 때 

내가 귀엽고 말 걸기 쉽고 분위기를 가볍게만들고 혹은 유머러스한 바보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을 거세하면 

남는 것은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내가 잘못된 약자에 불과하다는 생각만 남는다.

나는 완벽해야하고 멋있어야만하는 그 강박관념 덕분에 생기는 것이 부끄러움이다.

한번 무르고 가볍고 유연하게 갈 수 있는 힘이야말로 더 강해지고 멋있어지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뒤로가지않고 노빠꾸 정신으로 앞으로만 달려가겠다는 욕심 덕분에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그 내면에서 속삭이는 부끄러움 덕분에 더더욱 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그로인해서 풀악셀을 밟다가 귀여운 수준이 아닌 진짜  재앙 수준의 실수와 부끄러운 짓거리를 하게 되기 마련이다.

 

브레이크를 적당히 밟아도 괞찮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은 아무런 잘못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좋은 일이다.

정확히 그것이 '사소한 레벨'에 머무르고 일상적이며 평범한 것에 머무른다면 말이다.

 

더 큰 병을 막기 위해 일부러 바이러스를 주입하는 것이 백신이다.

사소한 레벨과 적당한 레벨의 공격은 상대방을 더 좋게 만드는 좋은 것이다.

 

공격하지 못하는 사람은 섹시하지 못하다.

언제 쉬어야할지도 모르고 언제 힘을 빼야하는지도 모른다.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며 힘을 쓴다.

 

차라리 웃어넘기고, 차라리 공격을 해버리는 것이 힘을 응축하는 방법이다.

내가 공격을 당해도 괜찮은 것이고

내가 공격을 해도 괜찮은 자유를 알아야한다.

 

그렇지 않을 때가 오히려 정말 무서운 일이 벌어질 때다.

부끄러워?  -> 아주 이기적인 괘씸한 말이다. 혼자 완벽하겠다는 것이니까. 

불쌍해서 공격을 안해? -> 우월한 입장에서 에너지를 하나도 쓰지 않겠다는 매우 싸가지 없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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