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잘입는 것보다 피부가 좋은 것이 기본적으로 미모에 기여하는 비율이 더 크다.

옷을 잘입는 것도 때와 장소에 따라 정말 중요한 것이겠지만 그 기본적인 힘의 차이는 비교할 수 없다.

 

피부는 몸에 더 가깝다.

옷은 계속해서 바꿀 수 있고 고쳐나갈 수 있는 것에 비해

피부는 좀 더 영구적이다.

옷이 외부라면, 피부는 내부다.

가까운 내부에 있는 것은 언제나 힘이 더 강하다.

 

피부 또한 몸에 있어서는 가장 외부에 있는 것이다.

피부가 하얕고 깨끗한 것 따위보다 좋은 식습관으로 낮은 몸무게를 유지하는 것이 미모에 훨씬 더 기여한다.

박명수 급으로 못생겼으면 식습관이고 뭐고 잘지켜도 못생겨보이겠지만은

그래도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나, 그어떤것보다 미모에 기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먹는 것은 실제로 내부로 들어가서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먹는것보다 더 가까운 것은 무엇인가?

정말 코앞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나는 지금 저 깊은 곳에 있다.

나의 근원은 몸보다도 더 내밀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먹는 것보다 생각이 훨씬 더 깊고 가까이에 있다.

생각을 잘하는 사람이 몸관리를 못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생각이 어그러졌을 때 식욕을 다스리지못하고 살이 찌게 된다.

생각이 먼저 발현하고, 그 다음 몸관리를 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생각이 올바른 사람은 예뻐보인다.

더 들어가면 무엇일까?

 

 

피지컬 바디 (몸, 오감)

멘탈바디 ( 생각 )

이모셔널 바디 (감정)

스피리츄얼 바디

4가지의 몸이라고 불리는 이것들은 중요도의 차이가 없다고들 말하는데, 그건 확실히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것들에 순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깊은 것이 외부의 것을 만들어내고 선행해야하는 것은 분명하다.

깊은 것을 위주로 집중하는 것이 당연히 더 옳다.

4개의 기둥이 각각 판때기를 바치고있는 건물의 느낌이 아니라,

지구에 내핵, 외핵, 멘틀, 지각이 있는 것처럼 감싸고 있기 때문에 

4가지 모두가 내핵을 포함하고 지키고 있기 때문에 -> 모두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신입사원이 중요한 것도 분명히 맞지만, 그렇다고해서 사장과 같은 에너지나 기여도를 가지고있다고 감히 말할 순 없다.

신입사원이 사장을 대변하고 대리인이 되기 때문에 같은 그룹을 형성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마치 바로가기 폴더가 허상에 가까운것처럼 껍데기는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개발영역으로 생각해보면 백엔드가 프론트엔드보다 분명히 중요하다.

하지만 프론트엔드가 없으면 애초에 만들어지지도 않는 것이기 때문에 외부의 것이 중요하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부의 것이 비중이 높아야한다는 것 + 100%가 되면 안된다는 것. 이 두가지가 성립해야할 뿐이다. 

 

 

생각은 감정이 만들어낸다.

감정관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

감정적으로 안정된 사람이 생각을 많이 하고 전략을 짜고 대가리굴리는 사람을 너무나도 쉽게 이겨버린다.

이성의 길이 대세가 될 때, 감정에 집중한 스피노자는 너무나도 옳다. 스피노자는 감정의 단계까지 올라가는 인간의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시작이기에 그가 완전히 최고로 대단한 사람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애덤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이라는 책이 있는 것처럼 감정은 사실 도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스피노자 또한 에티카라는 윤리학이라는 이름을 지은것에서도 알 수 있다.

 

도덕적인 사람만큼 예뻐보이는 사람이 없다. 

도덕적인 것은 착한 것이 아니다.

내면에서 올라오는 그 감정의 길들을 결따라 걸어가는 것이다.

화가나는 길이 올라오면 화의 길을 가는 것 또한 도덕적이다. ( 그것이 실제일 때만 )

즉 기본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도덕적인 일이다. 

화를 참음으로써 내 마음에 상처를 낸다면, 화를 내는 것이 도덕적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화를 참기만 하겠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감정적으로 안정된, 즉 화낼때 화내고 차분할 때 차분한 사람이 언제나 승리한다.

감정적으로 안정되면 감정을 표출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감정이 중요한것과 , '감정적인 결정'이라는 표현이랑은 전혀다르다.

착한사람들이나 참다못해 감정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계획을 짜지 않는 것(P유형)이 감정적인 것이 아니다.

계획을 짜지 않아서 두려움이 올라올 때는, 계획을 짜는 것이 감정을 존중하는 것이다.

계획을 짤 필요가 없다고 느껴질 때 계획을 짜지 않는 것이 감정을 존중하는 것이다.

문제가 생겨서 감정적인 결정을 내려야만한다면 결국 감정을 존중하지 않았기에 벌어진 일이다.

그냥 방만하고 나태한 것과 여유가 있는 것은 전혀 다르다.

 

생각을 많이하고 심사숙고하는 사람도 대단하지만

감정을 많이 표출하는 사람은 더 대단한 것이다.

누구나 입꾺닫하며 냉정한척 가만히 있고 싶지만 그렇게 쉬운것만 하다가는 힘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감정을 많이 표현하는 곳으로 가야한다.

어떤 분야에선 아무느낌이 없지만, 어떤 분야에선 '와 이거 좋다'라던지 멋있다 라던지 감정이 올라오는 곳에 머물르고 감정을 표현해야한다.

 

흔히 예술가들이 감정을 다루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만 전혀다르다.

잘생각해보면 예술가들은 그 어떤 것보다 눈에 보이고 화려한 것들을 다룬다.

몸 중에 몸이다. 외면 중에 가장 외면이다. 고로 별로 중요한 사람들은 아니다.

현실과 실용적인 부분들이 더 내면적이라 할 수 있다.

감정은 그어떤 분야로도 특정하기 힘들정도로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긴 하지만

그나마 가깝다고 볼수있는 것은 법조계와 판사, 윤리학 선생님, 공직자, 외교부(언어나 커뮤니케이션 관련), 실용 책을 쓰는 작가(철학자) 정도 일 것이다. 즉 인간관계의 비중이 높은 직업들이다.

음악을 들으며 느끼는 감정보다, 법원가서 느끼는 감정이 더 강렬하다는 것은 해보면 그냥 알 것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스피리츄얼 바디는 무엇일까?

영적인 몸이기에 여기까지 내려오면 귀신같은 소리를 할 수밖에 없어진다.

정말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귀신같은 소리는 외면중에 외면인 예술가들의 뮤직비디오에서도 많이 나오는 것 같으니, 그냥한번 생각해보자.

 

영성적인 몸은 직관이나 느낌같은 것들이다.

감정이 인간관계라면, 영성은 나와의 관계다.

여기는 정말로 분야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공통된 곳이다.

앞서 감정과 관련된 직업들이 상당히 속박되어있고 어려운 것을 알 수 있는데 

하물며 여기는 그야말로 감옥이다.

선택하지도않은 나라는 것에 갇혀서 바꾸지도 못하고 평생 살아가야한다.

 

여기에서의 나라는 것은 인간관계를 포함한 나에서 -> 나.

사람들을 생각하는 나다.

감정단계가 인간관계단계였기에 거기서 한단계만 내려온 것뿐이기 때문이다.

 

이 내면의 사장님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나에게 생각도 감정도 허용하지 않은 절대권력자이다.

좌뇌도 우뇌도 사용하지 못한다.

그 사장이 말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정해져있다.

기쁘고 행복하게 있다가도 사장님이 문으로 들어오면 그냥 무표정이 되고 언제든지 명령에 대답할 수 있게 열리게된다.

임신한 부인의 상태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냥 부인이 아닌 새로운 인간을 품고있는 부인이기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하는 대상이 된다.

실제로 피지컬과 멘탈은 남성적이고, 감정과 영성은 여성적이라고 할 수 있으니 적절한 비유라고 볼 수 있다.

여성에게 충성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옳다. 대영제국의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옳은 시스템이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여성이라기보다 아이에게 충성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 더 맞다.

 

 

감정의 단계가 사람들 사이에 있는 나라고 한다면

영성의 단계는 사람들을 위하는 나다.

모든 내가 아니라, 나라는 것들 중 일부분인 '사람들을 위하는 나'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착하게 퍼주는 사람을 말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가장 잔인하고 사악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 아닌 것은 모조리 배제해버리기 때문이다.

영국이 대의를 가진 것도 있지만, 동시에 얼마나 사악했는지를 보자.

역사가 흐를 수록 그 극과 극은 더 커질 것이다.

더 큰 대의와 더 큰 잔인함이 세상에 나올 수밖에 없다.

 

 

아이와의 관계는 흔히들 표현하는 인간관계라고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동등하지 않고 뭔가 일방적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어떤 직업이나 분야에서도 공통된 특성이지만 (어떤 직업이던 사장이 있다) 

진짜 어쩔 수 없이 비유적으로라도 꼽아본다면 아동과 관련된 직업이 간접적으로나마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보육, 특수교육 선생님

사회복지 공무원, 

애니메이션, 게임, 희극인 등 ( 이것들은 외면적인 예술이지만 기본적인 단계는 영성의 레벨 이라고 생각함 ), 

당연히 종교영역, 영성 영역, 신비나 미스테리관련 포함

청소년관련 상담, 진로 등의 자기개발영역의 종사자.

소아과 의사

그리고 부모. 가족. 

이정도로 볼 수 있다.

사회라기보다는, 가족이라는 느낌이다.

 

공통적인 특성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딱히 보여지거나 남기는 것이 없는, 아낌없이 주는 느낌이 있다.

동식물을 키워내는 것과도 조금 관련이 있다.

 

나의 내면아이를 품는 것. 즉 부모가 되는 것.

아이처럼 살자고만 말하는게 아니라, 그 아이와 함께하는 것이기에 부모가 되는 마음이다.

그런데 그 아이와 함께하다보면 부모조차 아이처럼 되는 것이 사실이기에

아이처럼 살자라는 말도 동일하다.

그 중간에 올바른 아이가 되는 느낌이라고만 보면 된다.

 

절대적인 아이의 고집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를 내려놓고 받아들이는 것.

자기생각 없이 그저 통합하고 모으는 것.

전체를 나로 보는 것.

 

 

능력으로 따져본다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적응력, 상상력, 회복력 등으로 볼 수 있다.

더 정확한 것은 자기수용, 책임감, 성실함 이다.

 

나와 가장 가까운 것은 바로 그 마음이다.

다른사람이 아닌 나자신이 가장 가깝다.

아이처럼 친해지는 마음이다. 가장 가까운 자식을 보는 마음이다.

그 마음이 가장 쌔다.

가장 핵심적이기 때문에 아주 조금만 상승시키더라도 엄청난 결과가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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