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문제로 본다는 것은 해결이 가능한 무언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상상태가 분명하게 있고, 그것에 비해 낮아져있는 상태라고 생각하기에 문제가 문제가 된다.

원래 이래야만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뜻은 그 반대로써 달성해야할 목적지가 없이, 그 낮아져있는 상태 자체를 디폴트 상태로 생각한다는 의미다.

완전한 포기다.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던 그것은 내가 그것을 문제로 보지 않기로 생각이 바뀐 것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계속해서 나에게 데미지와 어려움을 줄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나는 문제가 있는 곳에서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 해결될 일말의 희망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돌벽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길을 찾기 위해 돌아가듯이 환경에 알맞게 나는 길을 찾아 이동할 뿐이다.

문제를 붙잡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다른 곳에 갈 수 있다.

 

벽은 잘못이 없다. 그저 그렇게 생겨져있다.

문제를 외부로 돌리는 것이 아닌, 나의 잘못으로 돌린다는 것은

내가 게임 캐릭터를 벽이 아닌 길로 가도록 움직이지 않았다는 게임 플레이 방법을 숙지하지 못했다는 것 뿐이지

내가 감옥에 가야하고 죄를 지었기 때문에 속죄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게임을 하고 있는데, 움직이지 않았다.

게임을 하지 않았다. 벽에 꼬라박고만 있었다.

 

나는 초보자일 뿐이지, 죄인이 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나의 탓으로 돌린다는 것은 내가 생각을 바꿔야한다(혹은 목적지를 바꿔야한다는 혹은 존재자체, 성격자체를 바꿔야한다는)는 뜻이 아닌, 가야할 길을 바꿔야한다는 뜻일 뿐이다.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닌 플레이어를 왼쪽 화살표키를 눌러 방향을 이동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게임은 그저 진행 중이다.

 

 

문제를 보았는데도, 고난이 찾아오는데도 감사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것은 내가 가진것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내가 감사할 것과 문제를 남북분단시키듯이 철저하게 칼로 자르는 것이다.

고난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나는 내가 가진 것을 모래한톨까지 긁어모아서 꽁꽁 싸매고 길을 떠나는 것이다.

문제가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게임 캐릭터를 이동시키는 것이다.

문제를 주신, 고통을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하며 기꺼이 고통속에서 살아가겠다는 멍청한 뜻이 아니다.

 

 

문제는 떠남으로써 해결된다.

문제는 문제가 아닌 축복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은 오직 내가 감사한 것을 바리바리 챙겨서 떠날 수 있다는 것 하나에만 의미가 몰려있다.

실제로 지리적인 위치를 바꾸는것이 가장 첫번째일 것이고 그 이외에 떠날 수 없는 상황일 때에도 정말 여러가지 의미에서 떠남의 정의가 있을 것이다.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을 들인다던가, 한번도 안가본 곳을 가본다던가, 생각을 바꾼다던가.

아는게 아닌 모르는 상태로 가는 것.

 

문제는 떠나라는 신호다.

어딘가로 가라고 하는 명령이다.

안가면 계속해서 명령한다. 계속해서 신호를 준다.

정확히 그기능 이외에는 어떤 것도 담겨있지 않다.

 

 

우주 어딘가에는 반드시 나의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는 시선이 있다.

축구공이 구르는 것에 아무런 문제 없듯이, 칼이 감자를 자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듯이.

또한 나는 어떤 문제를 아무런 문제도 아닌 것처처럼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있다.

그런 감사한 것이 나에게도 있다.

 

그렇다면 나의 힘을 내 문제를 해결해줄 어떤 존재와 교환 해보는 것이다.

나는 그 존재의 문제를 풀어줄 수 있고, 그 존재는 나의 문제를 풀어줄 수 있다면 거래가 성립된다.

 

그렇다면 문제란 무엇인가?

문제는 문제인가?

아니다. 그저 누군가, 어떤 존재를 만나기 위한 이동수단에 불과하다.

탈 것에 불과하다.

무조건 나와 같이 가야만 하는 동반자일 뿐이다.

타면 하나도 아프지 않다. 타지 않고 걸어가니까, 아픈 것이다.

원래는 그 탈 것을 타고 가야만하는 먼 거린데 걸어가니까, 아픈 것이다.

같이가면 아프지 않다.

그 친구는 내가 아는 곳이 아닌 모르는 곳으로 가도록 해준다.

과거에 사로잡힌 것이 아닌 미래로 가게 해준다.

 

 

그 탈것을 타기 전까지의 행동에 대해선 고마워할 필요도, 미안해할 필요도 없다. 그 탈 것의 무지성적인 공격은 분명한 데미지고, 내가 그 탈 것을 공격한 것도 너무나도 당연한 정당 방위다. 작용이 있기에, 반작용이 있었을 뿐이다. 

누가 먼저 선빵을 날렸는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짜피 데미지는 똑같기 때문이다.

고마워해야할 건 그 데미지를 받았는데도 아직까지도 내가 가진 것이고, 미안해 해야할 것도 무언가를 잃어버린 나 자신이다.

 

 

판단을 중지함으로써, 나와 문제를 철저하게 분리 시킨다.

 

멀리서 바라본다.
게임 플레이어가 된다.

다른 곳으로 신경을 이동 시킬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해결책을 찾는다.

그렇기에 새로운 것과 만나고, 진보된 능력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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