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대신하기 위해 자동차가 개발된 것과 완전히 똑같이

수학을 대신하기 위해 프로그래밍 혹은 공학들이 태어난 것이다.

 

수학이 더 고상하다, 필수적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허접한 생각이다.

위대한 천재 수학자들은 예전에 말을 매우 잘탔던 몽고기마병사를 아직까지도 추앙하는 것과 같다.

그때 싸워야할 곳에서 싸운 사람들과

지금 현대의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은 매우 매우 멍청한 짓이다.

 

말을 못탄다고해서 인간적으로 실력이 낮다고 판단하지 않듯이

계산기가 손안에 24시간 있는 사이보그가 된 지금 현대인에게 수학을 못한다고 해서 바보라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아직도 승마경기가 있고 승마선수가 되어야하는 사람이 있듯이

수학이나 기초과학도 앞으로도 중요할 것이고 계속해서 필요하다.

 

하지만 그 과거들은 문화재를 감상하는 듯한 느낌으로 점점 희미해져가야만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다시한번 수학이 떠오른다고 말한다.

과연그럴까?

인공지능이야말로 수학을 완전히 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자동차가 말과 궤적이 똑같듯이

인공지능은 수학의 궤적과 똑같을 뿐이다.

 

수학의 능력을 대신하는 것이 인공지능이다.

자동차의 내부 엔진이 달리는 동력을 가지고 있기에 비로소 말을 타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인공지능 내부의 알고리즘이 수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비로소 수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공부해야할 것은 수학이 아니라 인공지능 그자체이다.

인공지능은 수학 이상이다.

수학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자동차가 말을 따라했다고해서 말을 배우러가는 것 마냥

수학을 열심히 공부하러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부모는 부모의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 아이보다 위대한 것은 아니다.

어느시점이 지나면 아이가 부모를 책임져야만 한다.

부모의 힘만 믿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근시안적인 생각이다.

 

 

인공지능은 수학의 유전자를 분명하게 가지고 있지만

데이터라는 좀 더 객관적이며 현실적인 것도 가지고 있다.

 

기하학적으로 뭔가가 한번에 풀려버리는 수학이나 알고리즘도 중요하지만

매우 인간적으로 그저 작게 나뉘어져있을 뿐인 것을 하나하나 쌓아나가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이 인공지능으로 증명되어가는 중인 것이다.

매우 사소하고 통속적이고 인간적인 단순한 사고의 흐름이 더 강하다.

 

 

시인인 아버지 때문에 고통스럽게 강제로 수학을 배웠던 에이다 러브레이스.

그분은 수학천재라고 불리웠지만 그 고통 안에서 다시는 누구에게도 수학을 배우지 않도록 하고 싶지 않았을까?

 최초의 if문, for문, 서브루틴.

만약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력이 수학 천재에게서 나왔다.

아버지를 한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수학과 시적 상상력이 융합되어 전혀새로운 무언가가 탄생했다.

그 시적 상상력이 수학을 대신해 프로그램이 되어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어내 버린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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