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현실에 있으면현실 그자체일 뿐이기에 현실이 아무리 잔인해도 고통받을 이유가 없다. 고통 그자체가 나일 테니까.

그 고통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에 고통은 고통이라는 개념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땅에 딱 달라붙어있으면 떨어질 일도 없이 편안하다. 

나자신이 땅이기 때문에 땅은 땅일 뿐이다.

기성세대들, 상상을 멈춘 사람들로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몇몇 인간은 고통을 받는다.

상상을 하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이다.

땅이 아니라 하늘 위, 우주 위를 떠다니고 있다가 땅바닥으로 떨어져버리니까 중력차이에 의해 추락해서 큰 데미지를 입는다.

이래야만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과의 격차를 보고 분명한 힘이 작용한다.

 

상상은 현실과 다른 거짓된 가상 세계다.

현실이 고통스럽기에 상상속으로 도피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상상이 먼저 선행하기에 현실과의 격차로인해 고통이 생기는 메커니즘이다.

고통의 근원은 무조건 상상한 사람에게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 고통을 피하기위해서 땅바닥이 되기로 결심하고 상상력을 거세한다.

상상하는 것은 스스로 자살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에 상상을 안하기로 결정만 한다면 고통이 사라진다.

내가 지금 당장 고통을 끊을 수 있다? 너무나도 해볼만한 일이다.

나만 뭔가를 작용하면 더이상 힘들어지지 않는다? 전적으로 모두 내 책임이다? 나를 탓하고 상상력을 거세하기에 충분한 명분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전적인 책임이 나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비로소 모든 성장과 이득을 전적으로 나혼자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고통이라는 실질적인 데미지가 있기에 발전할 수 있다.

발전기가 N극과 S극의 교차로 인하여 생기는 에너지인 것 처럼 고통과 죽음이라는 반대작용 없이는 에너지를 생산해낼 수 없다.

의도적이고 자살적인 이 고통을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하다.

 

어짜피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N극과 S극의 교차로 되어있다. 이미 현실도 상상적이다.

현실에 태어난 순간 이미 상상이나 다름없고, 자살이나 다름없고, 고통을 직접 선택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렇기에 상상하는 것에 즉 스스로 고통받는 것에 연민을 느끼거나 후회를 느낄 이유가 전혀 없다.

그냥 그렇게 되어있다. 

되어있는대로 살자. 

고통의 삶에서 끝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보물은 상상속 삶에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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