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했어? -> 그냥 잤어.

 

그냥이라는 단어는 공부를 해야만하는 상황을 별것 아닌 것으로 한번에 품고 있다.

공부보다 위에 있다.

 

준비물 챙겨왔어? -> 아니 까먹었네. -> 에이 그냥 가자.

이 상황도 마찬가지로 그냥이라는 단어엔 부정적인 상황 자체를 긍정하고 품어버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냥이라는 단어를 외치는 순간 이전에 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그 순간을 시작점으로 만든다.

시작지점이기에 이유가 없다. 왜? 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왜? 라는 질문은 그 이전 것을 살펴보는 기능을 하는데 그냥이라는 단어엔 아무런 효과가 없다.

더이상 후진할 곳이 없는 공간에서 후진기능이 필요가 없는 상황과 같다.

 

공부했어? -> 잤어 -> 왜? -> 그냥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상대방은 가장 깊은 곳인 시작지점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절대로 공부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으로 받아들어야한다.

 

일주일동안 굶으면 음식을 그냥 먹는다.

차려먹지 않고, 맛있게 하려고하지도 않는다. 가장 날 것의 형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다.

 

 

날것의 상태, 시작지점의 상태는 본능의 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에고적인 생각이 범접할 수 없이 자동적으로 움직여져버리는 상태다.

 

누가 어떤 행동을 하는데 이유없이 한다고 생각해보자.

두가지를 알 수 있다.

1. 지금 굶은 상태처럼 그 행동의 결과를 무조건적으로 취해야만하는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2. 상황이나 변수에 상관없이 무조건 튀어나올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가 해소되거나 발동조건이 채워지지 않는 순간 행동의 의지도 사라져버린다.

잠깐은 본능에 의해 그냥 하는 사람들과 똑같아보이지만 지속성에서 차이가 난다.

 

수학의 공리, 가장 작은 단위의 원자 등 가장 근원적인 것은 어떠한 것에도 동일하게 똑같이 주어지며 이동가능하다.

그렇기에 지속가능하다.

그냥이라는 단어는 '근양' 이라는 말에서 온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양기의 뿌리와 같은 느낌이다.

 

 

이유가 없을 때, 그냥한다고 한다. 

얼핏보면 아무런 절실함이나 간절한 마음이 없이 대충 하는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우주적인 배고픔을 가지고 있을 때야말로 그냥 할 수 있다.

공짜로 어떤 행동을 하거나, 아프고 어려울 때도 상관없이 행동하거나 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그 행동의 결과에 대한 무한한 배고픔이 있기 때문이다. 이유없는 배고픔은 하나의 단일 대상이 아닌 전체적인 연결성에 대해서 느끼는 배고픔이다.

모든 것을 원하기에 오히려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유라는 것은 특정 대상에 대해 말해야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공짜로 태어난다. 원한 기억도 없이 그냥 세상에 태어났다.

인셉션에서 꿈과 현실의 차이가 어떻게 그 공간으로 오게 되었는지 알 수 없을 때라고 한 것처럼 꿈과 같다.

그럼 이세상은 꿈과 같은 곳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곳은 현실이다. 꿈에 의해 시작된 현실이다.

우리가 자면서 꿈을 꿀 때 만큼은 꿈이 정말 현실이라고 느끼는 것처럼,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꿈에 의해 시작된 현실이다. 그게 조금 긴 버젼일 뿐이다.

꿈과 현실이 이분법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꿈이 있고 현실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소중한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선 누군가 꿈을 시작해야만한다.

다른 현실을 살기 위해선 무조건적으로 꿈이 필요하다.

 

현실에서 아무리 더럽고 추악한 부정적인 것이 있어도, 그것과 아무런 상관없이 그냥 하는 것.

꿈을 받아 현실에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현실을 무시하고 꿈처럼 사는 것.

나의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꿈

(=내 고통이나 삶에 대한 스토리나 이유없이 결핍없는 그냥하게 되는 것을 말함. 무슨 비현실적인 몽상을 말하는게 아님.)

을 꿀 때 더 좋은 현실을 만들 수 있다.

현실의 고통이 그 꿈을 불러올 수 있었다는 걸 알 때, 현실의 고통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꿈을 꾸는 나는 현실의 나가 아닌 근원에 있는 꿈과 연결된 더 큰 나이다.

 

이유없는 행동을 하자. 그곳이 나의 시작점이다. 후진할 곳이 없으니 앞으로 나갈 수 밖에 없는 곳이다.

내가 왜 그것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꿈을 붙잡자.

공짜로 주자. 왜? 그냥.

 

그냥하면 부작용이 없다. 비용이 없다.

대가가 없으니 계속한다.

저항이 없으니 두번 세번 내번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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