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의 목표를 100개로 나눠서 1개 씩 한다면 어떠한 목표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직접 실행해보면서 느낀점은 오히려 부담스럽다는 느낌이다.

하루에 실행할 양은 정말 작지만 그것을 시작하는데는 꽤나 큰 양이 든다.

지금까지 다른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도 있겠지만 어제배웠던 것이 기억안나면 다시해야될까봐 걱정되는 마음 때문도 있다.

입장료 톨비같은 것이 분명히 있다. 

놀이공원에서 하나 타고 집에 온 뒤, 톨비내고 또 들어가서 하나 타고 나오고 하는 느낌이다.

코끼리도 냉장고에 넣을 수 있겠지만, 코끼리는 이미 죽어있다.

그 느낌은 마치 코끼리를 분해하는데 드는 노동력인듯한 느낌이다.

 

항상 쫓기는 느낌이고 내가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매일매일 '목표가 아직 멀었다' 라는 것을 피부로 체감하고 그것을 견뎌내며 가야한다. 몸이 패배감에 적응해버릴 것 같다.

이렇게 하는 방식은 목표를 절대 달성하지 못하게 만드는 역기능적인 방식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것 같다.

 

 

목표를 나눈다는 것은 단순히 양을 쪼개는게 아니다.

애기들이 먹는 이유식은 '잘게 쪼개져' 있을 뿐이다.

애기들에게 쌀밥을 1/100 씩 하루에 먹이는게 아니다. 그건 고문이다.

단지 소화가 잘되도록 최소단위를 분할 시킨 것 뿐이다.

즉 목표를 나눈다고해서 그 열량이 크게 줄어들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최소단위로 분할된 잘게 쪼개진 영양소들은 오히려 더 많이 먹을 수 있다.

많이 먹을 수 있기 위해 목표를 나누는 것이지 오늘 작은 양을 하고 편해지기 위해서 목표를 잘게 쪼개는것이 아니다.

이게 왠 지구멸망할 자기연민이란 말인가?

내가 목표를 부담스러워하니까 양을 줄여서 조금씩 준다?

양이 줄어든 만큼 시간을 밀리고 그것이 가진 힘도 적게 먹는다.

 

 

작은 목표부터 달성하라고 말하는 것들이 절대로 양이 작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대학교 편입을 위해 가장 쉬운 토익 700 점을 먼저 달성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그 작은 목표에 시간까지 분할하여 작은 양으로 최대한 길게 부담없이 공부한다?

절대 아니다.

작은 목표이기에 오히려 많은 양과 빠른 시간 동안 몰입해서 클리어해야한다.

목표가 작은만큼, 많은 양을 공부해도 쉬울 것 아니겠는가?

 

어제 내가 공부한 것을 잊어버릴 것 같다는 느낌만큼 더러운게 없다.

다시해야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많은 양을 공부함으로써 지식과 지식 사이에 고통 접착제가 붙어 짝 달라붙어있게 해야만한다.

그래야 단단하게 잊어버리지 않게 된다.

바구니에 분명히 담아두게 된다.

그 대신 쉬운 목표이기 때문에 그 고통이 매우 견딜만하고, 적절함을 가진다.

포스트잇의 접착제처럼 딱 필요한만큼의 고통이기에 속도를 내고 많은 양을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이유식과 죽이 있는 이유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양을 먹이게 하기 위해서 있다.

목표를 나눈다는 것은 자세하게 신경쓰지 않기, 나중에 다시보기, 어려운 것은 나중에 하기 등 분할 된 무언가를 통해서 속도를 내고 양을 흡수하기 위한 작업이다.

생각은 나중에 하고, 우선 이 양을 처리한다는 분할을 말하는 것이지 양을 분할하는 것이 아님을 알자.

 

 

무언가 큰 목표를 시작하는 순간, 마치 그 큰 목표를 이미 다 가져버린 것처럼 미친 듯이 집중하고 몰입하는 모습으로 곧바로 변해야한다.

축구선수를 목표로 하는 순간 축구선수가 늘 그렇듯 지금 바로 축구선수의 루틴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 하루종일 축구하기 )

다만 시작이기 때문에, 쉬운 것을 하루종일 할 뿐인 것이다.

그것을 해봐야 진짜 조금이라도 내가 축구선수에 알맞는 사람인지 정확히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정말 간절하다면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가야하지 않겠는가?

 

분할에 분할이 아닌, 분할을 했으니 그에 걸맞게 그것을 통합하는 행위를 해야 아다리가 맞다.

질을 나누는 것이고, 양은 나누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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