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돈을 주는 것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 나자신에게 돈으로 산 선물을 주는 것도 똑같음 )

하지만 누군가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은 많은 것을 변화하게한다. ( 문제와 과제를 해결하는 것 )

 

돈이라는 마법을 통해 원하는 것을 모두 주면 사람에게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

사람들과 만나지 않아도되고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도되고 여러 경험을 하지 않아도된다. 

한마디로 눈에 뵈이는게 없어진다.

 

하지만 일자리를 주는 것은 사람들을 변화하게 한다.

수많은 상황과 사람을 만나면서 관찰력이 생기고 방향이 생긴다.

아주 조금이라도 움직이기 시작한 바퀴가 속도를 받아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동력이 생겨나게 된다.

성취감과 자존감, 반복가능성과 성장이 복리로 곱해져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렇기에 일을 함으로써 잉여가 생긴다. 일을 했기에 휴식이 생긴다. 

 

돈을 받는 것은 정지해서 죽는 것이지만, 일을 하는 것은 편안하고 따뜻한 휴식이 생긴다.

흔히 생각하는 '일자리' 에서 느껴지는 답답한 회사원과 노가다를 하는 노동자는 일을하는게 아니라 돈을 받고 있는 정도의 레벨이기에 죽음에 다가가는 것뿐이다. 그들은 아무런 문제도 풀지않기에 일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0과 1의 차이처럼 두가지의 차이는 너무나도 크다. 살아있다면, 살아간다면 인간답게 살아야한다.

 

정부가 사람들에게 돈을 푸는 것은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사람을 가장 엿먹일 수 있는 방법이 돈을 아무렇게나 주는 것이다.

돈을 주는 것은 어떤 순간도 의미가 없다. 죽어가는 사람에게도 의미가 없다.

받는 순간이 바로 죽음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공짜로 돈을 주며 선심쓰는 얼굴을 보일 수 있는건 순간뿐이다.

아무리 착한척을 하려고 노력해도 돈이 빠져나간 그 순간부터 마음이 불편하고 화가나기 시작하기 때문에 돈받은 사람을 노예로 취급하기 시작한다.

내가 준 가치에 맞는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상대방을 죽이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돈을 주는 것은 뒤통수를 몽둥이로 쌔게 휘두르는 폭력과 전혀 다르지 않다. 상처 더 컸으면 컸지 절대로 작지 않다.

 

돈을 푼다고해서 멋진 정부, 멋진 부모가 된다고 착각하는 것은 정말 기만적이다.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이 성공했던 이유는 기존과는 다른 전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주었기 떄문이다. 그때 시대에서 가장 풀어야할 문제에 정확하게 자리잡을 수 있었기에 사람들은 의욕이 생기고 자부심이 생길 수 밖에없는 진짜 일자리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저 일자리를 줘야한다. 

어떤 순간이라도 어떤 힘든 상황이라도 문제와 과제를 줘야한다.

일자리를 주지 못한다는 것은 그사람을 사람취급하지 않는 정도의 레벨인 것이다.

그사람에게 받을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돈을 주는 행위이다.

일자리를 만드는 생각의 레벨은 어떤 순간에도 가능하다. 

나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나자신이던 누군가에게도 돈을 줘선 안되고 문제를 해결하는 현물을 줘야한다.

그런데 그 현물이 그사람이 골치아파하던 문제가 아닌 아무런 상관이 없는 현물이라면 그건 돈이나 마찬가지다.

실제적으로 아무짝에 쓸모없으니 팔아버리면 돈이니까 말이다.

선물을 준다면 그사람이 절대로 못하고 있던 것을 줘야한다.

그 사람이 담당하고 있는 영역이 아닌 것에서 힘들어하고 있다면 그걸 해결해주는 것이 진정한 선물이다.

목수에게 삼성선풍기를 선물해주는 것은 기본적으로 옳은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목수에게 나무로된 탁자를 선물하면 그건 일자리를 빼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하물며 뭐로든 변할 수 있는 돈을 주는 것은 모든 것을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다.

목수가 선풍기가 있다면 선풍기를 선물하는 돈을 주는거나 다름없다.

그 목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일부분인 선풍기를 대체해버리려는 시도나 마찬가지이기 떄문이다.

 

그런 일을 당하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마음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간다.

나자신의 일자리를 계속해서 빼앗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가난해진다.

내가 해야할일을 남에게 맡겨버리기 때문에 나라는 것이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자신, 혹은 다른사람을 어떻게 대우해야하겠는가?

 

당연하게도 일자리를 줘야한다.

지금 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집으로 들이는 것이 아닌 내가 한번도 보지 못한 것. 내 영역을 확장하는 것.

즉 '문제'를 나에게 선물해줘야한다.

문제를 봐야한다. 나의 현재 시선을 넘어서 있는 그 문제를 봐야한다.

다른사람들과는 그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한다. 함께 문제를 보면 되는 것이다.

그냥 그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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