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있던 집의 아무것도 없는 흙 마당에 풀이 많이 났다. 계속 났다.

집주인 할머니가 풀을 뽑으라고 눈치를 준다. 계속해서. 중얼거린다.

뽑기 귀찮았고 약을 쳐도 계속 자라난다.

그랬더니 집주인 할머니가 보란듯이 아침 7시에 와서 인사도 안하고 사람들을 데려와 시끄럽게 나무를 벤다. 개무시하듯이. 그리고 풀은 뽑지않고 그대로 두고 간다.

화가 났다. 이런 쓸데없는 고통이 왜 생겨야하는지. 인간성이 어디까지 떨어져야하는지.

 

그순간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고통의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마침 직업이 없던 때라 이 사건의 의미는 나에게 풀을 관리하는 능력을 주기 위함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풀을 뽑는 정도가 아니라 정원사가 되어야하는가 라는 생각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정원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교육과정을 찾아보고 공부하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날 어떤 사건이 생겨서 이사를 가기로 결정하게 되었다. ( 이사갈 집이 생겨서 )

참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고통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순간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내가 받아들인 것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으로 변모하였다.

이사온 집에선 사람답게, 인간다운 정도의 마당 관리를 하게 되었다.

마치 이정도 일은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이런 집이 허락된 듯이 보상의 느낌이 들었다.

 

이 경험 외에도 확실한 답을 느낀 순간 그답이 사용될 필요도 없는 곳으로 이동하게 되는 경험이 굉장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침 오늘도 너무나도 이상한 경험을 해서 참 신기하다.

스스로 답을 찾았더니 세상이 조금 다른 답을 건네주는 경험.

도약은 이런 메커니즘으로 이루어 지는 것일까?

 

조금 기만적이다. 차라리 내가 내린 답을 실행했으면 좋았을텐데. 그정도로 강한 확신을 느낀 것인데.

근데 만약 그게 궁극적인 답이 아니라면 세상은 너무나도 따뜻하다.

그게 답이라고 느낀건 기특하지만 한계가 있는 생각이기에 다른 길로 가라고 안내해주는 것 같다.

어쩌면 다른 답을 향해 가기 위해서 통과의례를 치룬듯한 느낌도 든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라이프코리아트위터 공유하기
  • shared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