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고 고통스럽고 분노스러운 것들을 '해결' 하는 것은 쉽다. 그것보다 내가 힘이 더 쌔다면 말이다.
하지만 나보다 힘이 쌘 것들이라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선 큰 비용이 든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창조가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저 돈이나 에너지가 많은 사람은 해결하고, 그것이 없는 사람은 해결못하는 일직선상의 스펙트럼에 놓이게 될 뿐이다. 힘이 없으면 굴복하고 노예가 되는 제로섬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 문제를 같은편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떠한 상황이라도 가능하다. 돈이나 실력의 여부와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 그자체를 동력삼아 그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럼 오히려 문제가 클수록 더 큰 에너지를 가진 것이 되어버리는 모순적인 상황이 된다.


로마가 지배한 곳의 문화와 기술을 받아들인 것처럼, 징기스칸이 자기를 고통에 빠트린 마적들의 힘을 그대로 사용한 것처럼, 대영제국이 해적을 공인한 것 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자(때려 없애버리는 자)가 성공하는 것이 아닌 문제를 같은 편으로 흡수하여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나간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다.

불을 물로 끄는 건 쉽다. 구석기 시대에서도 물 근처에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불을 지속적으로 이용한 증기기관을 만드는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 된다.


드라마 절반, 푸르다에서 나온 산들바람 선풍기 발명과정에서도 완전히 똑같은 메커니즘이 적용된다.

가장 처음엔 선풍기의 너무 쎈 바람을 벽에 부딪혀서 없애는 방법을 고안하지만 결국 '없어진, 해결되어버린' 바람은 너무나도 약해서 선풍기의 기능을 상실한다.
그렇기에 선풍기의 강한 바람은 그대로 두고, 이중날을 통해 약한 바람을 반대방향으로 동시에 돌린 끝에 자연바람과 유사한 선풍기를 발명해낸다.
먼저 있었던 문제는 그대로 두되, 그것의 반대방향의 힘을 가해주는 것.

불 - 물과 같은 서로를 완전히 상쇄시키는 반대가 아닌
같으면서도 방향만 다른 것을 채워주는 것.
문제를 때려잡는 게 아니라 문제가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것. 문제가 보지 못했던 것을 봐주는 것이 창조력의 핵심인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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