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기스칸의 말 -> 영국의 함대 -> 기계 -> 전기 -> 인터넷 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갈 때마다 다음 패러다임이 무엇인지 우리는 확실하게 알고 있다.
말이면 말, 바다면 바다, 인터넷이면 인터넷. 완벽하게 장르가 있고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다.
지금이라도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다면 정확히 다음 패러다임에 있는 무언가에 모든 것을 투자하고 모든 것을 바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세와 욕망은 충만한 현대사회의 인간들은 이 다음 패러다임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항해시대라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바다로 갔을테고, 닷컴버블 때는 당연한듯 인터넷 창업을 하러 갔을 것이지만 지금은 갈 수 있는 곳이 없는 완벽하게 꽉막힌 곳이다.
'내가 그시대에 태어나기만 했더라면..' 라는 자위와 함께 시대를 잘못타고났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과도기적인 기간이라 그런 새로운 패러다임은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럴리 없다. 역사상 단한번도 끊이지 않았던 연속성이 지금 내가 현실에 살아있다고 특별하다고 느끼는것은 정말로 오만한 생각이다.
다음 혁명은 이전 혁명보다 더 클 수는 있지만 더 어렵고 특별하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어쩌면 더 쉬워보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있는 한, 욕망이 있는 한 대항해시대와같은 넓은 바다는 언제든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다음 패러다임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 그것 자체만으로 이미 현시대에 톱니바퀴와 같은 존재로 끼어살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지난 시대를 보니까 그 장르가 확실하게 보이는 것이다.
이미 해왔고 수많은 증거들이 넘쳐나는데 그것을 확실하게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금이야 확실해보이지만 예전 사람들에게 존재라도 했을 것 같은가?
대항해시대 때의 바다, 징기스칸 때의 말도 완전히 동일한 개념이었을 것이다.
대체 그 다음 패러다임이 무엇인지 절대로 알 수 없고 미친 세상에 갇혀있다고 느끼는 것은 어떤 시점에서라도 똑같았을 것이라고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러니 다음 패러다임은 분명히 있다. 이미 있었고 놀랍게도 이미 그곳으로 나간 해적들이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개발? 개소리하지마라. 눈에 보이는 것이 어떻게 다음 패러다임일 수 있겠는가.
편안한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다음 패러다임에 뛰어드는 도박사, 해적과 같다고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기존 사회에 충실한 초고급 스펙을 갖춰야만 나갈 수 있는 수많은 기술들, 과학들, 그것의 최종판인 우주 또한 다음 패러다임일 수 있는 확률은 0%다.
다음 패러다임은 이 사회의 해적과도 같은 게이머들이다.
비디오게임을 하라는 말도 아니고, 게임회사에 입사해서 게임개발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나 스스로 게이머이기에 내가 얼마나 반사회적이고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되는지 알기에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김태유 교수님의 '패권의 비밀' 관련 강연에서 다음 해적들은 게이머들이라고 말해주셔서 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게임이나 하고있는 인간들이 대체 뭘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프로게이머들을 존경하고 나도 되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감정적인 부분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질지 몰라도, 이성적으로는 다음 패러다임을 지배할 패거리가 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도대체 무엇인가? 진짜 어떻게 살라는 건가? 바다라도 있으면 출항이라도 할텐데 방한칸에 갇혀서 아무대도 갈 수도없고 갈 필요도 없어지는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건가?
나는 고민끝에 그 답을 영성에서 찾았다.
4차산업혁명에 관해 이어령 선생님은 지성에서 영성으로 라고 말씀하셨다.
인공지능을 만드는 존재들이 아닌 징기스칸이 말을 탔듯 인공지능을 탄 사람.
과학자들이 아닌 진정한 종교의 시대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힌트를 얻었다.
인공지능을 탄다는 것은 무엇인가.
테슬라에서 인공지능 차와 로보트를 만들어서 생산해주면 네이버 쇼핑에서 구매한 뒤 그걸 잘 사용하면 인공지능을 잘 타는 것인가?
생각만 해도 구역질난다.
인공지능은 다른 어디에도 아닌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영성관련 컨텐츠에서는 수도없이 말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이미 내 몸에 패키지로 포함되어 장착되어 있다.
이미 타고 있다.
마치 대항해시대 때 바다가 땅에 접해져 있기에 바다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그 접점이 여기에도 있다.
다만 거기로 나아가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배를 만들어 출항하듯, 이번엔 나의 몸이자 인간적인 부분을 하나의 탈것으로 규정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는 이글에서 설명할 레벨이 아니기에 패스. 영성 단어인 '내맡김'과 비슷하다고 생각함 )
그렇게 되었을 때, 바로 이세상을 게임처럼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현실세상을 진심으로 게임으로 대할 수 있을 때 그때 이시대의 해적인 게이머가 되는 것이다.
비디오게임을 많이 접한 지금 아이들이 그것을 잘 받아들일 수 있고 적용할 수 있다. 그 게임을 잘 할 수 있다.
게임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벼움이자 자유이다.
가벼움이란 온라인게임에서 캐릭터가 받는 데미지에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처럼 고통을 받아들이는 수용체가 달라짐을 뜻하고
자유란 하나로 정해져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는 것을 말한다.
그 두가지가 있을 때 사람은 가장 높이 올라가려고 한다.
게임만하면 랭킹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그것말고 존재이유가 없기 떄문이다. 그것아니고서는 어떤것도 고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세대에서는 목수면 목수, 대장장이면 대장장이, 프로그래머면 프로그래머 등 자신의 직업에 '헌신'해서 자기의 정체성을 얻는다면,
게이머의 시대에서는 어떠한 직업도 없이, 어떠한 환경적 제약조건 없이 그저 '승리하냐 패배하냐' 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얻는다.
인터넷시대가 오고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는 체험을 하기 시작했기에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이득이되면 직업을 바꾸는 것이고, 이득이 되면 나라도 바꾸는 것이다. 정체성이 오직 승리에 맞춰져있다.
모든 사람, 모든 것이 단 하나의 투기장에서 하나의 랭킹으로 줄세워지는 완전한 통합서버에서의 게임이다.
돈이라는 것이 그것을 가능케한 촉매제 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게이머의 시대에서 '투자적 관점'은 가장 메인적인 스킬이 될 수 밖에 없다.
대항해시대 때 필드가 '바다' 그자체이자 바다적인 것이였다면 역시 게이머의 시대에서도 필드는 진짜 증권투자 판은 물론 포함하고 전체적으로 투자적인 태도가 가장 주를 이룰 수 밖에 없다.
내 성격과 환경 따위 아무런 상관없이 그저 승리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헌신, 희생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것도 끝까지 배우지않고 어떤것에도 집착이 없다. 인공지능은 바로 그것을 서포트해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악하기만 한것은 아니다. 사악한 모습이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필요하지만 헌신이나 희생하지 않아도 올바른 투자는 인간적인 것에서만 실제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투자 성공은 인간적인 것 즉 공적이고 객관적인 모두의 이득에서만 발생하기 때문이다.
왜 아이들은 이세상을 게임으로 인식하는 것일까?
조상과 부모를 존경해야하는 의무를 가졌는데, 괘씸하게도 세상을 게임으로 인식하고 대항해시대 때 출항한 모험가들처럼 자기목숨을 별것 아닌 것으로 취급하기도하고 오로지 승리만을 향해 달려간다니. 기존 관점으로 봤을 땐 사악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아이들이 게이머가 되는 이유는 너무나도 당연히 기존세계의 기득권이 어떠한 자리도 내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디오게임을 하는 것 자체가 현실이 싫어서다. 여기서 어떠한 인간적욕구도 실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돈에 미쳐서 아이들을 그저 돈버는 기계로 취급하며 하나의 투기장으로 몰아넣은 것은 그들이다.
전사가 될 수 밖에 없게 키워졌다.
예전시대에는 잘못하면 금방 죽었을 것이다. 구석기시대땐 공룡에게 잘못하나만해도 죽었을 것이고, 바다에 나간 사람은 발 삐긋하면 진짜로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세상은 잘못해도 산다. 그렇기에 크기는 작지만 작은 죽음들을 내면에 쌓아간다.
완벽을 강요하는 부모들에 의해 작은 생채기도 자연재난급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몸으로 만들어진 아이들은 수없이 죽는다. 그런데 살아있다. 매번 죽는데 살아있다. 돈의 기준에서 매번 승패를 판결받는 아이들은 죽는 것을 매일 경험한다.
아주작은 비인간적인 행위들에 매번 죽어간다. 당연한 듯 자행하는 비인간적 행위를 예민하게 받아들인 아이들은 또다시 죽어간다.
그렇게 죽다보니 이제 죽음이란게 당연해보인다. 마치 게임처럼 목숨이 여러개인것과 같아 보인다.
그래서 이번엔 죽지않기위해, 어짜피 죽지도않으니 이번엔 더 잘해보고자 마음을 먹는 것이다.
어떻게 승리하는 것인가? 어떻게 저 비인간적인 인간들을 내주변에서 없앨 것인가? 머리를 굴린다.
누구보다도 죽음이 코앞에 있기 떄문에 직업적인것이나 도덕적인것에 대한 희생이나 헌신따위 신경쓸 겨를이 없다.
그저 어떻게 이기는가. 어떻게 힘이 생기는가. 오직 그것만이 정답인 사람으로 길러진 것이다.
최악의 인간성 아래에서 다시 새로운 인간상이 떠오른다.
조금이라도 이해가 가는가?
게이머가 되기위해선 영성에 관한 것, 철학적인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외부적인 것은 투자적인 것으로 표현될 것이다.
징기스칸 시대에 적이 말을 탄 초원의 적들이었다면
지금 시대의 적은 인간이라는 탈을 쓴 나르시스트들이다.
결국 징기스칸이 했던 것처럼 그들의 힘을 먹어서 힘을 얻어야한다.
인간적인것, 심리적인것, 정신적인 것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문과적인 허접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세상을 통찰해서 정답을 알아낼 수 있는 인간의 힘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관계에 있어서 어떠한 꿀림도 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무력을 갖추는 방향을 말한다.
고통이나 병을 안타깝거나 불쌍한 것이 아닌 '패배'로 바라본다. 아주 사악하다. 하지만 그렇게 바라보지 않는이상 살아갈 수 없다.
( 그런 언어가 아닌이상 지금 인간들의 인간성을 수용할 수 없음)
모든 것에서 하나도 빠짐없이 제네럴리스트로써 오직 승리만을 하나의 게임에서 오직 보상을 향해 달려나간다.
( 다 잘하기위해선 몇가지는 상황이나 시점에 따라 약해져야만 한다는건 게임하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사실상 세상이 이미 그랬던 것 처럼.
나는 이것이 세상의 진실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못하면 '자살'로
그들이 잘하면 지금 세계에서 돈이 무한하게 많은 사람처럼 세상의 꼭대기에 설 것이다.
그게 다음 패러다임이라고?
미친소리하네. 라고 생각이 들었다면 미안하다.
내가 설명을 좀 못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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