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도구라고 한다.

마음은 내가 아니고 스마트폰 같은 도구다.

스마트폰을 매일 들고 있지만 그 물건이 내가 아니듯 마음 또한 마찬가지이다.

 

마치 벽을 눈으로 보고 '벽이 있다'라는 정보를 획득하고 그것을 반영하여 행동을 하듯이

마음에서 슬픔이라는 감정이 올라오면 거기에 '벽이 있다' 라고 인식하면 된다.

그런 것을 인식하라고 만들어진 도구이다.

 

[불멸의 그대에게] 라는 애니메이션에서도

'인간은 스스로 변하기위해 감정이란 것을 느낀다' 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간축이 아닌 시간축에서 바라봤을 때 바로 지금의 흐름이 벽을 만들어내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그곳을 가지 않기 위해 감정이라는 신호가 생긴다. 변하기 위한 신호에 불과하다. 가만히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슬픔을 느껴지면 어떻게 해야하겠는가?

우선 벽을 보고, 어떻게 생겼고 어떤 곳에 자리잡았는지 볼 뿐이다. 그리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벽은 나를 막아서기도 하지만,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라는 동시적인 기능을 한다.

슬픔을 보고 벽을 보듯이 생각하면 된다.

그냥 있으면 고마운 벽이다. 계속 벽치기를 하지말고 우회해서 다른길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마음이라는 센서가 얻어낸 정보를 계속해서 무시하는 것은

눈을 감고 걸어가려고하는 사람과 똑같다. 

 

 

기쁨은 뚫려있는 공간과 같은 뚫려있는 시간이다.

그냥 그쪽으로 가면 된다.

슬픔은 당연히 있는 것이다. 

세상에 벽이 엄청나게 많고 모든 집에는 벽이 있듯이 그냥 엄청나게 많은 것이다.

슬픈게 당연한 인생이다.

그렇다고 비련의 주인공 연기를 하는 것은 말도안되는 일이다.

슬픔을 있는 그대로 두고 기쁨을 향해 나아가면된다.

슬픔을 지워버리고 깨끗하게 없애버리려는 짓은 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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