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는 옳고 그름을 철저하게 따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옳고 그름이 절대로 중요시 하지 않는 사악한 모습이 있다.

 

'맛있는 라면' 이라고 적혀있는 문구를 본다면

에고는 '맛있는' 이라는 단어에 저항하여 

이거 오히려 맛없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에고들은 세상과 거꾸로 가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역배팅만이 정답이라고 확신한다.

 

'머리 못자르는 집' 이라는 미용실의 간판을 보면

에고는 '머리 못자르는' 이라는 단어를 보고

이거 진짜 머리 못자르는거아니야?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에고들은 말이라도 좋게 써놔야 그걸 뇌가 믿는다고 논리를 만든다.

 

긍정성을 믿는 에고들은 '맛있는'을 보고 본래의 것보다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지만 정확히 그만큼

'맛없는'을 보고 본래의 것보다 나쁜 기분을 일부러 느낀다.

부정성을 믿는 에고들도 당연히 반대로 똑같다.

 

 

사실상 에고들에게 중요한 것은 너를 죽이고 싶다, 너를 지배하고 싶다, 너를 무시하고싶다 이다.

그 상대 물체의 옳고 그름이나 잘하고 못하고가 고려되지 않는다.

어떻게든 반대의 논리를 만들어서 공격을 할 수 있다.

그들의 목적은 공격이지, 그 판단 근거에 있는 이유가 아니다. 이유는 어떻게든 만들면 된다.

 

그럼 에고들은 어떻게 다스려야할까?

'맛있는' 이라는 말도 쓰지말고

'머리 못자르는' 이라는 말도 쓰지 말아야한다.

에고에게 판단을 주어선 안된다.

 

 

나를 공격하는 에고들에게는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난 이야기이다.

이미 게임이 정해져있다. 완전하게 규정되고 모든 것이 시작부터 끝까지 루트로 정해져있다.

그렇기 때문에 길을 벗어나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방법도 불가능하다.

 

그냥 벗어나면 당연히 나에겐 손해이다. 놓치지않아야하고 마지막 지켜야할 것이 있다.

그때는 좀더 다른 벗어나는 방법을 사용해야한다.

벗어난다고해서, 라면을 만들지 않을 필요는 없다.

차라리 라면이름을 '피너츠' 로 만든다.

그럼 에고는 생각이 없다. 생각을 하지 못한다. 판단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활동하지 못하고 정지한다.

 

말도안되는 제 3의 소리로 맞받아 친다.

완전히 생각에서 벗어나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 세상은 옳고 그른 것이 중요하지 않다.

다르냐 다르지 않냐가 중요하다.

 

 

'할 수 있어' 라고 절대로 생각하지말자. 나를 설득하지말자.

그 말을 해서 성공한 사람이 수억명이라도 하지말자. 그 수억명은 할 수 있었기에 할 수 있었다. 굳이 그말을 할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나만큼은, 할 수 없기에 할 수 있다고 설득하지말자.

 

'할 수 없어' 라는 생각을 절대로 믿지말자.

두려움을 충분히 느끼는 것 까지는 좋은데, 그것 자체를 완전히 포기할 필요가 없다.

할 수 없으면 할수없다는 건 충분히 인정하고 가만히 있는게 아니라

할 수 없다는 그것 말고 다른 방향을 찾아보자.

가지말아야할 길을 체크하고 발견한 것 뿐이지 목적지까지 가는 것까지 포기하면 안된다.

거기말고 다른 길이 있다.

 

몸이 움직이도록 내버려두자.

생각이 선행했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말자. 강제로 어떤 행동도 하지말자.

에고는 건드리면 폭발하는 폭탄이다.

내 어떤 생각도 주입시키거나 개입하면 안된다.

 

노출된 에고에 대해선 철저하게 복종해야한다. 

니말이 맞다고 해줘야한다. 니말대로 해야한다. 그래야 조금 하고 그만한다.

이미 노출된 위험에 저항하지말자. 게임이 끝나있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이미 정해진 것이다. 결과를 바꾸려고하지 말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누군가가 쳐놓은 감옥에 있을 수 밖에 없다.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다른 곳으로 가자.

어떤 의견도 없는 곳만이 나의 활동영역이자 자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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