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가 상호 보완적이라면 '믹스' 다.

단순히 두가지가 같이 있는 상태다.

예를들면 허접한 된장국을 맛볼 때 된장국이 아닌 된장 + 두부라고 표현해버린다.

그만큼 맛이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섞여있기는 하지만 각각이 따로따로 노는 상태.

 

두가지 이상이 하나가 되버리면 '융합, 퓨전'이다.

맛있는 음식은 그 자체의 이름으로 불린다.

비빔밥이 맛있다 라고 표현하지, 비빔밥 안에 도라지도 맛있고 고기도 맛있고 나물도 맛있다 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두가지 이상이 연결되었다고해서 무조건 올바른 것이 아니다.

허접한 남녀가 모이면 아이를 출산할 수 있지만 지옥의 가정을 만들 수 있다.

분명히 창조하고 위대한 업적을 이룬 것 같지만, 가장 높은 기준에서보면 잘못된 일도 있다.

 

 

믹스는 상호보완적이다.

저 상대방이 나의 단점을 해결해주고, 나는 장점을 통해 상대방의 단점을 해결해주는 상호보완적인 관계.

굉장히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지만 결국에는 비지니스적 관계에 불과하다.

이런 관계는 얼핏 보면 정말 천국인 것 같아 보인다.

깔끔하게 나의 단점을 상대방이 모두 제거해주기 떄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어떤가?

나의 단점이 없어졌지만, 나의 장점을 사용해야하기에 소모가 된다.

수학적으로 양 극단이 0으로 수렴하며 범위가 좁아져버린다.

단점도 없고, 장점도 없는 그런 상태로 계속해서 나아가는 방식이다.

결과적으로는 힘이 딸려서 정지해버린다.

 

 

정말로 옳은 방식은 [단점도 많고, 장점도 많은] 범위가 늘어나는 방향이다.

단점은 어짜피 많으니까 그대로 내버려두고 장점을 끝까지 극단적으로 높여버리는, 일론머스크와 같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조이보이의 방식이다.

쭉 앞으로 나아가버린다.

잘 줄어들지 않는 단점을 줄이는데 비용을 쓰는게 아니라

차라리 잘 늘어나는 장점을 극단적으로 늘려서 번 비용으로,

너무나도 쉽고 간단하게 단점의 비용을 처리해버리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유리를 다루기보다, 고무를 다루면서 사는거다.

잘깨지는 유리를 보호하기위해서 나에게 있는 고무를 활용도 해보지못하고 그저 물건취급하며 팔아 제껴서 비용을 마련하는게 아니라,

유리가 깨지던말던, 나에게 있는 고무를 적극적으로 그 본연의 역할을 활용해서 비용을 벌어들인다.

 

 

믹스 : 어떠한 대상과 '상호보완'적으로 평행한 관계로써 교류한다. 나도 주고 너도 주고.

융합 : 어떠한 대상과 일방향적인 관계를 맺는다. 완전한 종속관계로서 한몸이 된다. 나만 준다.

 

 

빵 + 패티 + 양파 + 치즈  

이 4가지의 재료가 모이긴 모였지만 각각 독립적으로 기싸움을 하며 존재하는 상태가 아니라

'햄버거'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빵, 패티, 양파, 치즈가 조합되는 것이다.

햄버거라는 속성을 만들어 내기 위해 4가지의 재료는 본인들의 정체성을 모두 제거해버리고 완전히 일방향적으로 종속된다.

완전히 융합되어 각각의 재료들의 이름은 불리지 않고

오직 햄버거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린다.

재료 중에 단 한명도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빵도 아니고, 패티도 아니고, 양파도 아니며 치즈도 아니다.

 

 

 


 

 

믹스를 넘어서 융합으로 가기 위해선 믹스의 특성을 분명히 알아야만한다.

요즘은 A + B 뭔가가 추가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난리가 나고 대단한 것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더하기 위해서, 손실을 봐야한다면 그것은 믹스의 단계다.

비지니스 관계처럼 뭔가를 줘야 뭔가를 해야 얻어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융합은 무언가를 더했는데, 마치 한몸인 것처럼 어떠한 손해도 없이 더해지는 그런 공짜적인 조합이다.

같은 혈액형의 피를 수혈받으면 마치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그냥 더해져버리는 그런 속성 공통점을 가진다는 것이다.

 

 

여자 아이돌그룹인 뉴진스와 에스파 둘다 너무 좋다.

하지만 뉴진스의 컨셉을 한번 봐보자.

뉴진스의 컨셉은 과거 세대의 음악인 Y2K 컨셉인데 너무 예쁜 여자애들이 촌스런 옛날 반다나 두건이나 옛날 패션을 입고 나온다.

그것 자체가 컨셉이어서 매우 자주 그런 모습을 보인다.

반다나 두건을 써도 너무 예쁘고 잘 소화한다. 과거를 미화시켜버린다.

그 효과는 빛나는 여자애들을 좀 더 친숙하고, 보기 좋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고 여러 세대를 아우를 수 있다.

 

하지만 예쁜 여자애들을 '조금 덜 예쁘게 만드는' 그 손실의 방법론은 과연 정당하고 올바른 걸까?

그 효과를 얻기위해 지금 손실을 일부러 본 것이다.

일부러 바보모자를 씌워서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라는 효과를 강제적이고 인위적으로 자아냈다.

나는 그래서 뉴진스의 컨셉은 한단계 레벨이 낮은 '믹스'의 단계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것과 섞이려는 모든 시도는 믹스의 단계다.

 

 

완전히 반대로 에스파는 미래지향적인 컨셉이다.

메타버스, 아바타와 같은 가상세계의 쇠맛을 표현하는 컨셉이다.

어린 여자애들이 그런 컨셉을 가져가기 위해서 어떤 손해를 보고 있는가?

애초에 어린애들이야말로 메타버스와 아바타들을 사용하는 주체들이다.

그 컨셉을 가져가기 위해서 미모에 손해를 본다거나 장르에 한계를 준다거나 하는 것 자체가 없다.

오히려 더 신비롭고 미모를 늘려주면 늘려주지 손해를 보게 만들지 않는다.

너무 자연스럽게 이식이 되는 그들 자체다.

미래를 향한 것은 모두 융합이다.

 

그들 자체이기 떄문에 어린애들을 싫어하거나 관심이 없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는 없지만 본인들 자체로 존재할 수 있다.

뉴진스보다 인기가 폭발하거나 하지 않지만 꾸준히 지속할 수 있으며 매번 새로운 느낌을 자아낼 수 있다.

또한 너무 빠르게 성공하면 미성숙한 부족함을 드러낼 수 있는 법이다.

지금 나의 부족한 것을 부족한대로 인정하고

긴 시간동안 착실하게 실력과 배움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단순한 구조로 반복된 탄소나노튜브

 

 

가장 엄밀한 학문인 수학은 '동어 반복(Tautology)'으로 이루어졌다고 수학자들은 말한다.

매우 단순하고 똑같은 개념을 반복했을 뿐인데, 거기서 새로운 것이 창발되는 개념이 존재한다.

애초에 쌓아 나가고 확장해나가는 것은 벽돌 쌓듯이 반드시 똑같은 개념들이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균형을 잃고 쓰러질 수 밖에 없는 조합이 되어버린다.

 

이질적인 것과 합쳐지는게 아니라

동질적인 것이 합쳐질 때 진정한 융합적인 창조다.

 

뉴진스라는 어린애들과 과거컨셉은 그 자체로 이질적이나

에스파라는 어린애들과 미래컨셉은 그자체로 동질적이다.

 

다른 것과 합치는게 아니다.

다르지만 본질은 똑같은 것들과 합치는 것이 진정한 융합이다.

동질적인 것과 합치더라도 애초에 완전히 똑같은 건 없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밖에서 누군가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창조적 경험을 추구해야하는게 아니라

나 자신과 거듭제곱으로 만나고 만나서 새로움을 창발해야만한다.

 

 

 

닐 슈빈의 책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에서 자연 생물들이 대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아주 잘 설명하고 있다.

대체 물고기들이 어떻게 지상으로 나와서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물고기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기존의 '부레'를 하나 더 복제해서 만든 뒤, '용도 변경'을 통해 '폐'를 만들었다.

 

1.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을 추가로 복제

2. 복제 된 것은 남는 것이니까 '용도 변경'을 통해 지상에서 숨을 쉴 수 있도록 하는 폐를 만듦.

3. 폐와 부레를 동시에 가지고 바다와 지상을 동시에 넘나듦.

4. 지상에서만 살기 위해 부레를 퇴화 시키고 폐를 발전시킴.

 

물고기들은 부족한 것을 채우기위해 새로운 부품을 장착하거나 무언가를 들여온 것도 아니었다.

지상으로 이동시켜줄 어떤 브로커를 만나 돈을 내고 간 것도 아니고, 비용을 치르지도 않았다.

친구와 힘을 합쳤거나, 스쿼드를 구성해야만 지상으로 갈 수 있도록 한게 아니라

언제든 혼자서도 갈수 있는 방향으로 확장하여 힘을 얻었다.

자기가 가진 것을 복제하는 정도의 쉬운 일을 통해, 말도안되는 경계를 넘었다.

 

 

문제는 그대로 두고, 계속해서 즐거움만을 찾아나가야한다.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선 이질적인 것을 들여와야하지만

즐거움은 동어 반복적으로 똑같은 것들이기에 쌓아나갈 수 있다. 

계속 반복할수있기에 계속 확장할 수 있는 개념이다.

 

최근에 우연히 본 책 '미술로 키워라'에서 이동영 선생님은 [잡초를 뽑는 대신 꽃을 심어라] 라고 말했는데 너무나도 공감되었다.

잡초를 뽑는 문제해결을 계속하려고하기보다

차라리 그곳에 꽃을 심어서 잡초에 가는 영양분이나 햇빛도 뺏아버리고 

잡초와 꽃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정원을 만드는게 정답이다.

힘들이는 건 틀린 것이고

즐기는건 정답이다.

 

급진적으로 새로움을 들이는게 아니라

한단계 한단계 근처에 있는것으로 확장해나가야한다.

나부터 시작해서 바깥으로 확장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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