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와 think는 같은 어원을 가진다고 한다.

생각해줬기에 감사함을 느낀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생각을 해줬네 라고 느낄까?

 

목마른 곳에 정수기가 있으면 '생각을 했네'라고 느끼고 감사함이 생긴다.

그말인 즉슨 문제나 고통이라는 구렁텅이가 없는 평평하고 온전한 필드에서 느껴지는 마음이다.

생각은 마치 도로를 까는 것처럼 잘 닦여진 평평함이다.

그래서 지나다닐 수 있고 그곳에 살아갈 수 있다.

결국 편안해진다. 걱정거리가 없어지며 결과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생각해줬기에 내가 편안하다.

 

인생에 감사하고 환경에 감사하기 위해선

잘 닦여진 곳에 머물러야한다. 즉 누군가가 생각을 해놓은 곳에 가야한다.

그래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남아있는 생각에너지를 통해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

 

사람은 구렁텅이가 없는 부드러운 곳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이미 온전한 곳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생각을 잘하는 사람은 감사함에 머무른다.

자기가 가진 것에 머무른다.

 

뭔가가 끊켜있고 편집증적인 전환, 급격하고 열기 넘치는 호러물에 가까운 곳에 가지 않는다.

그곳은 내가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즉 생각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은 곳이며 동시에 내가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고통을 야기한다.

 

실행가능하고, 조작가능하고, 문의가능하고, 공적인 소통이 가능한 그런 곳이 감사한 곳이다.

합법적이며 접근가능하고 예측가능하며 재료가 주어지는 그런 곳이 감사한 곳이다.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의 단계를 연속적으로 한발 두발 걸어나갈 수 있는 길이 있는 곳이다. 

단 하나도 빠짐없는 온전한 곳이다. 문제가 생겼다고 팔하나 자르고 시작하는 그런 귀신같은 곳이 아니다.

단 하나도 남에게 100% 의존해야만하는 것이 없는 자립적인 곳이다.

슈퍼점프와 이단 널뛰기를 할 수 있고 공중제비를 돌 수 있을만큼의 강한 근육과 날렵한 몸매가 있어야만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밟아 나갈 수 있는 계단이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긴장되지 않는 곳이다.

 

해볼만함이 느껴지는 쉬운 곳에 머물러야한다.

그런 곳이 자기자신이다. 자기를 선택해야한다.

생각이 있는 사람은 자기자신을 선택한다.

바로 그곳에서 생각을 한다.

 

바로 그곳에서 도전을 한다.

그 편안한 곳에 머문다고해서 문제가 절대로 발생하지 않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 낙원같은 곳이 있으면 뭐 더이상 도전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런 곳은 없다.

편안하다고해서 그곳에 눌러앉아 온실속의 화초가 되는 것은 생각이 없는 사람일 뿐이다. 기생하는 기생충일 뿐이지 편안한 곳에 머무는 것이 나쁜 것이 되는 건 아니다.

자기 몸으로 무언가의 문제를 풀어야한다.

과거에 누군가 생각해놓은 그 편안함 위에서 또다시 한단계 올라가 문제를 풀어야한다.

그렇게 부드럽게 끊킴없이 이어나가야한다.

온전함과 감사함을 먼저 알아야, 그것을 이어나간다.

그런방식으로 이어나가지 않은 곳에서 누가 살아갈 수 있겠는가.

 

무조건 과거에 있던 것, 오래된 것을 말하는 건 절대 아니다.

완전히 deprecated 되서 버려야할 것도 있기 때문이다. 마차가 자동차보다 오래되었다고해서 마차공학과에 입학할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오히려 큰 불편함을 야기한다. 재료를 구할 수도 없고 공부할 자료도 없으며 같이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무조건 부모나 우리나라적인 것, 토종적인 것에게 기대라는 말도 아니다.

부모도 나쁠 수 있기 때문이다. 옆집 이웃이 나에게 더 편안함을 제공할 수도 있는 것이 세상이다.

지금 내 기준에서 가장 오래된 것, 가장 편안한 것이면 된다.

직선적인 변수가 아닌 다차원적인 변수를 고려해서 선택한 자기자신이다.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 어려움을 통해 쉬워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곳이 참나이며 진정한 자기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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