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너무 사랑하니까 현재의 모습이 너무나도 맘에 들지 않아서 자기를 파괴해버린다.
사랑이 파괴를 불러온다.
너무나도 쉬운 문제앞에서도
공포영화에 나올 정도로, 전쟁터에서 적군에게 적용할 기만전략을 나자신 앞에서 사용한다.
눈앞에 보이는 너무 당연한 정답을 초등학생이 장난질 치듯이 일부러 피해간다.
청개구리처럼 일부러 반대로 함으로써 나를 철저하게 파괴해 나간다.
상대방 혹은 내가 극한으로 싫기 때문에 정답이 무엇이 되었던 상대방을 반대하는 것이다.
싫어하는 상대방이 A라고 말하면, 나는 그냥 B라고 외치면 끝이다.
난이도의 문제가 아닌, 완전히 대칭적인 자기자신의 모습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황에 빠져버린다.
모든 목적이 상대방을 기분나쁘게하고 파괴하려는 곳에 에너지가 쏠려있다.
그것자체로 목적성을 가지기 때문에 절대 이겨낼 수 없다.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에게 하듯이, 움직이면 움직인다고 때리고,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는다고 때리는 그런 폭력적인 악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떠나지 않는이상 이겨낼 방법은 없다.
에고라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다.
돈을 한탕 벌어보고자 투자하는 곳에선 그렇게 파괴적인 타이밍에 투자를 하게되기 마련이다.
내 마음속의 신은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는데, 돈이나 벌자고 장난질하고 있는 나를 보고있자니,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내면으로 보았을 때 나는 파괴되어 마땅하기 때문에 그것이 현실에서 벌어진다.
신은 이새끼 한번 졷되보라며 가장 기만적이고 가장 감정적인 함정 속으로 들어가도록 만든다.
어째서 신에게 버림을 받은 것일까?
그것은 내가 나자신을 너무나도 너무나도 극한으로 사랑해야할 만큼, 쓰레기같은 것만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극한으로 사랑하지 않는이상 버텨낼 수 없는 세상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은 나뿐만이 아닌 모든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나만을 사랑하고 있으니 신에게 버림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말 엄청난 모순이다.
나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로 인해 파괴되어야할 운명에 처한 것이다.
도둑질이라도 해야 생존할 수 밖에 없었던 도둑놈과 같다.
생존했더니 죽어야하는 함정에 빠진 것이다.
남을 사랑하고 관심을 기울일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기에 남들에게 버림받는다.
그래서 다시 자기를 혐오한다. 나는 이기적인 놈이라고.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고 나를 케어해주지 않는 상대방 또한 혐오해버린다.
내가 이렇게 불쌍한데, 왜 나를 케어해주지 않는지 억울해한다.
세상에 자기혼자밖에 없는 가장 쓰레기같은 놈이기에 모든 것에게 버림받은 불쌍한 놈이 된다.
둘다 맞다.
그렇기에 남는 건 죽음밖에 없다.
그들은 모든 지식, 모든 도움 등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모든 것을 의도적으로 거부한다.
왜냐면 자기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거부함으로써 계속해서 불쌍한채로 있어야 할정도로 자기 사랑에 갈망이 있기 때문이다.
혼자 있고 싶은 것이고, 세상에서 내 범위를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그 범위를 인정받으려면 도움들을 받으면 그만인 것인데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 작은 범위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나를 사랑하고 도와주려는 관심과 따뜻함이라는 게 완전히 끝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그런 상태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바다에 빠진 채로 지내게 된다. 일부로 의도적으로.
그렇게라도해서 얻고싶은 것이 있다.
자기를 조금 덜 사랑하라? 그따위 개소리로 그들을 설득할 순 없다.
모든게 너 위주로 되어있는게 아니니까 정신 좀 차려라? 그따위 훈계질로 그들을 설득할 순 없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 그따위 오글거리는 감성으로 그들을 설득할 수 없다.
결국 자기를 '더' 사랑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들로 인해 벌어진 것을,
자기사랑을 놓으라고 개소리를 하거나 내가 사랑해줄게 라는 더러운 말로 해결할 수 없다.
두 손을 올려 가드하는 방법을 알았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기에
두손을 올려 가드하는 방법을 배우려고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폭력을 당했기에 더 큰 자기방어를 세상에 불러올 수 있는 사람이다.
문제가 있었기에 더 큰 해결책을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의 지나친 자기사랑은 절대로 잘못된 것이 아니다.
지금 기준에서나 지나칠 뿐이지, 다음 세대 인간이 가져야할 기준치 인것이다.
그들이 가진 기준치의 사랑을 충족시켜야한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에 자기사랑을 과하게 하다가, 완전히 파괴하는 반복이 일어나는 것이다.
쭉 끝까지 밀고 올라가야한다.
파괴되던말던 상관없이, 다시한번 브레이크 때고 미친것처럼 쭉 끝까지 말아 올려야한다.
파괴를 많이 당해보았으니, 내성이 생겨있고 해볼만하다.
이미 잃을게 없는 상태를 기만적으로 달성했으니, 미친듯한 속도로 과하게 도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내 상식 선에서 '파괴'를 긍정하는 분야는
도공이 도자기를 만들며 아무 고민없이 깨버리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곳에선 실수를 개선하고, 가설을 세워 실험을 하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개념을 가져오지만
예술적이고 장인적인 레벨에서는 의도적으로 일부러 작품을 깨버리는 개념이 생겨난다.
자기혐오를 가진 사람은 예술가이자 장인이다.
그 자기파괴조차 긍정해야만한다.
더 힘있는 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다.
거의 바늘구멍과도 같은 매우 좁은 기준치의 용량을 가진 이유는 ( 쉽게 화내거나 아무것도 못하는 무기력 등 )
더 단순하고 더 깔끔한 레벨에 다가가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전혀 다른 방법과 전혀 다른 생각,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레벨까지 도달해가기 위함이다.
과대한 자기사랑은 충족되어야만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따라오는 자기혐오를 긍정해야만한다.
자기혐오를 해야만한다. 세상 사람과 달라져야만한다. 기존의 나와는 달라져야만한다.
자기한테 토닥토닥 하는 식의 자기사랑을 해선 안된다. 그런종류의 자기사랑은 충분하기 떄문이다.
파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반영해야만 한다.
그 에너지들을 통해 자기를 사랑하는 기준치가 충족되면
그때서야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단계가 된다.
지금 이기적이어도 상관 없다는 말이다. 지금 남들에게 버려지고 남들에게 신경과 관심을 주지 않는 쓰레기가 되도 괜찮다는 것이다.
나중에 그 누구보다 남들을 생각하고 도움이 되는
신이 흡족할만한 사람이 되는 과정의 중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파괴할만하니까 파괴하는 것이다.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안해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도 좋다.
그럴 때 그 파괴를 제대로 받아들여야한다. 쓸데없이 뭔가를 해보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했을 때 어떤 깨달음이나 알아감을 통해 그 손해는 다 메꾸고도 남을만한 상승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폭력을 당했을 때, 내가 그 폭력을 당할만 했다는 건 분명하다. 방어능력이 없었으니까.
억울하던 말던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방어능력이 없었다는 사실만 있을 뿐이다.
내가 다른부분에서 아무리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이라는 큰 범주에서 온전함을 확보하지 못했다.
내가 착하게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어도, 누군가의 폭력을 방어할만한 기본적인 능력이 있어야한다는 온전함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그 폭력은 나에게 이득이 된다. 온전함을 확보해 힘과 에너지로 변환 가능하다.
나의 더러운 부분을 씻어준다.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고 온전히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지금 기준보다도 더 많은 신이 있는 그곳에 다가가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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