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승패가 100% 정해져있다면,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논리의 오류다.
여기서 말하는 승패가 정해져있다는 뜻은
마치 어른 vs 아이 처럼 말도 안되는 매치업이 되었을 때를 말한다.
확률로 따진다면 80:20 혹은 99:1 정도까지 내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나도 억울하고 화가나는, 선을 넘는 '자유'의 세상에서는 그렇게 승패가 정해진 게임을 하게 되어버린다.
선진국은 먼저 올라간 뒤 사다리를 쎄게 걷어 차버린다.
위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을 통해 아랫것들을 지배한다.
어른이 아이를 쥐잡듯이 이겨먹어보려는 사악하고 찌질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역으로 애새끼들은 만만한 어른들에겐 무지성적으로 공격한다.
촉법소년의 나이라고 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버린다던가 인터넷 세상이라고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저질러버린다.
즉 자기들이 이겨먹을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어른이던 아이던
머리털 자란 원숭이라면 단 한명도 빠짐없이 모든 것을 빨아먹기 위해 이악물고 공격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앞과 뒤, 위와 아래도 없이 오직 그 순간에만 집중하여 모든 것을 걸고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어낸다.
미국남북전쟁부터 시작한 총력전은 어쩌면 당연한 인류의 방향인 것 같다.
갈 수록 레벨이 높아지고 어려운 게임이 되어가는건 당연하다.
스포츠나 게임의 랭크 시스템에서도 실력이 높은 사람일 수록 오히려 더 감정 상하는 일이 많고 살기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런 높은 곳에선 아주 미세한 차이로 인해 승패가 갈리기에 비로소 오히려 승패가 확정적으로 정해진 게임이 많다.
승부예측은 아래 단계의 레벨보다 높은 단계의 레벨에서 훨씬 더 쉽다.
정형화되어있을 뿐더러 총력전이기 때문에 누구도 방심하지 않고 빠짐없이 그 세계에서 안에서 조작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컨트롤 하기 때문이다.
변수가 없고 여유가 없다. 무슨 기사단의 명예, 사람 간의 예의, 도리 이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중세시대, 조선시대가 멸망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다.
그럼 도대체 이런 세계에서는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까?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패배가 정해져있다.
내가 이미 맞아야하고 내가 이미 고통을 당해야만한다.
이것은 내 조작범위에서 벗어난 일이고 그렇게 정해져있고 조직되어있다.
누구나 귀하게 자라고 순수한 마음으로 자랄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얼마나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인가?
과거 고대시대에는 아마 그런 것이 덜 했을 것이다.
어른은 어른끼리 싸우고 아이는 아이끼리 싸웠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에 여유가 있고 체계화된 시스템 속에서 모두 기회를 얻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들이 고통을 겪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겐 승패가 정해져있진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비대칭적인 이득을 얻는 상황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시스템 속에서 위에 있던 사람은 계속해서 위에 있고, 아래에 있던 사람은 계속 아래에 있는
권력의 교체라던가 신분상승의 기회같은 것이 철저하게 배제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매우 억울하고 잔인한 고통을 받는 세계의 단계까지 왔지만 그렇기 때문에 위아래의 변동이 커질 수 있다.
어른이 아이를 잔인하게 때릴 수 있지만, 그렇기 떄문에 비로소 아이가 어른을 이겨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었던 미국이 시작한 총력전이다.
이곳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계획되고 정해진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패배를 받아들임으로써 나에게 반대 쪽에 주어진 계획되고 정해진 승리를 쉽게 가져가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야한다.
패배의식에 휩싸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가진 것과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패배할 때 부드럽게, 저항하지 않고, 에너지를 최소화해서 패배해서 에너지를 아끼고
승리할 때는 더욱 더 크게 이득을 가져가기 위해 에너지를 내는 것이다.
패배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패배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단 하나의 팩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즐거움이다.
패배해도 유머로 승화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어짜피 정해져있는데, 그건 즐기면 그만인 것이다.
프로게이머 페이커 선수가 가진 장난끼와 같은 것을 가진 사람이 1위에 올라간다.
그 잔인하고 더럽고 정말 무규칙 무체급인 사이버 게임 내에서 장난끼를 가진 사람이 정점에 서있다.
아래에 있을 수도 있고 위에도 있을 수 있는 사람만이 총력전의 위에 설 수 있다.
고통을 고통으로 보지 않고 즐거움으로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고통을 오히려 좋은 것으로 볼 수 있는 사람. 그 안에서 이득을 찾을 수 있는 사람. 플랜 B가 이미 있는 사람.
낮은 곳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사람.
사카모토 료마가 그러했듯 모욕을 당해도 싸우지 않을 수 있는 사람.
징기스칸이 그러했듯 적장에게 임신한 아내와 그 아들 또한 장남으로 받아들이고, 적들의 무기를 품을 수 있는 사람.
그 안의 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만이 승리할 수 있다.
80:20 으로 질 수밖에 없게 설계된 게임에서도 20정도는 얻어갈게 있다.
그 자그마한 것들을 쌓아나가서 결국엔 정해진 승패조차 뒤집는 실력을 쌓아나간다면
승패가 정해진 게임에서도, 약함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축에 따라 승리할 수 있다.
인류는 호랑이와의 싸움에서 승패가 정해질 정도로 약하게 태어났기에 그 호랑이와 직접적으로 싸우지 않았다.
호랑이에게 영역을 내어주고, 패배한 곳에서 살아갔다.
바로 그 패배한 곳에서 호랑이를 이겨낼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 나갔을 것이다.
싸우지 않고 이긴 것이다.
패배하면서 이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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