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사람, 선배, 부모, 기성세대들은 허접하다.

하지만 그들 중 허접함을 선택함으로써 내가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얻은 사람이 있다.

아랫사람은 100이라는 이상치를 보면서 판단을 내린 것이지만

윗사람은 50이라는 가치를 엄청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것을 잡은 것이다.

그떄는 50도 엄청났기 때문이다.

아니면 50말고는 잡을 수 있는게 없었을 수도 있다.

50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수준에 머물렀을 수도 있다.

 

기성세대는 허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있는 50의 능력치 덕에 그 밑의 세대가 100이라는 이상치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엄청난 모순이다.

허접한데, 그 허접함이 없으면 나는 존재할 수 없다.

 

 

손흥민은 박지성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에 박지성이 기여한 부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더 큰 것을 노리다가 시대에 뒤쳐진 많은 사람들처럼 박지성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손흥민도 큰 가치를 내지 않았을 수 있다.

 

 

그렇기에 기성세대가 허접하더라도 받아들여야한다.

무조건 받아들이라는게 아니라, 그중에서 올바른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들이 허접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한단계 더 개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들이 허접하다고해서 무조건 내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그들의 허접함으로 인해서 의욕이 생기고 뭔가를 할 동기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할 일이 생기기 떄문이다. 

그로인해 성장할 수 있다.

한단계 씩만 나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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