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신의멘탈을 읽고>

내가 필요해서 만든 제품은 내가 사용하고 만족하면 그만이다.

자급자족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 제품을 갈고 닦아 다른사람에게 제공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어느정도 불편함을 느껴가면서 크게 변화하지도 않는 사소한 디테일을 챙겨가면서 '일'을 만들어서 해야하는 것일까?

내가 만든 제품을 더 발전시키기 위함이 전부가 아니다.

대충만들어서 내가 사용할만큼 만든 것과 다르게 다른 사람에게 팔 상품이 될정도로 깔끔하게 닦인 것을 만들면 나의 제품이 디테일해져서 나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그 격차는 그렇게 크지않다. 커보이지도 않는다.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기에 해야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나는 이미 끝났는데, 너희들에게 자비로운 내가 이것을 선사해줄게 와 같은 선민사상, 공익사상 또한 아니다.

진짜 이유는 가르침에 있다.

가르침이란 선생님이 제자를 위해 하는 행위다.

선민사상 같이 지배자가 개돼지같은 백성들에게 무언가를 공짜로 나누어주는게 아니라,

선생과 제자의 관계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남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또다른 나를 위해서 가르치는 것이다.

제자가 실력이 상승하면 선생은 당연히 그에 걸맞는 보수와 명예를 얻는 건 당연하다.

또한 가르치면서 그 지식은 완전해진다.

가르칠 정도면 나의 지식, 나의 제품을 대충 쓰지않고 정말로 실제로 적용해서 모범을 보이려는 에너지가 작용한다.

내가 말한 것은 적어도 나는 지켜야한다는 자존심 같은 거다.

내가 보지 못했던 측면을 제자들에 의해 발견되고 그 제품은 계속해서 발전가능한 상태가 된다.

내 시선으로는 별것아닌것처럼 보이지만 다른사람의 시선으로는 이것이 훨씬 더 확장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가르쳐야한다.

자급자족에만 머물러서 자기만 채워나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영적일 수 있지만 그만큼 힘이 약하다.

모든 것을 아는 전지의 능력을 가질 수 있어도 그것이 활용되고 적용되지 않는이상 연기같이 사라질 뿐이다.

내가 아닌 수많은 다양성에 의해 나의 것이 작동해야만한다.

나의 것이 나에게만 작동하는 주관적인 정답은 약하다. 내가 아무리 엄청난 무한동력 에너지를 만들었어도 그것은 가짜다.

누구에게나 가르칠 수 있고 누구에게나 팔 수 있는 단계가 되었을 때 그 객관적인 힘이 증명된 것이므로 그 때야말로 완성이다.




거기에 더해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유가 남아있다.
빵을 주고 우유를 받을 수 있는 교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제품을 주는 과정에서 창발적인 새로운 것이 생긴다.

아마존이 책을 온라인으로 더 잘팔려고 노력하다보니 너무나도 당연하게 인터넷 시스템에 대한 실력이 올라가서 당연한득 IT 대기업이 되어가는 과정처럼 가르침의 과정은 새로운것을 얻어가는 과정이 된다.

가르침이 있어야 새로운 배움이 생겨난다.


<가르쳐야하는 이유>
1. 돈과 명예를 직접적으로 얻을 수 있다. 단순히 파는 것보다 내가 가르친다는 느낌으로 이끌어주는 제품이라면 말이다. 간접적인 파생효과가 계속 생산된다.

2. 내 제품이 더 발전한다. 나에게 훨씬 더 효과적으로 적용가능하다.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잘못된 부분이 채워진다.

3. 새로움을 얻는다.
이미 내가 완성한 것을 왜 더해야하냐가 아니라,
새로운 것이 있기에 가는 것이다.
배움에서 가르침으로 까지 지속하는 사람만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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