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에서 "무죄(Not guilty)" 평결은 검찰이 유죄를 입증하지 못했을 때 내려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피고인이 실제로 ''무죄(Innocent)'' 라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아직 심증이 남아있는 상태라고도 볼 수 있다.
언제든 죄를 저지른 사람이 될 수 있는 확률이 있다.
원래 죄와 관련이 없던 일반사람들과 동일선상에 놓일 수 없으며, 죄인일 가상적인 확률이 뭍어있다.
흔히들 [ 이중부정은 강한 긍정 ] 이라고 말하는데 수학논리적으로 완전히 틀렸다고 볼 수 있다.
긍정은 그냥 긍정으로 표현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중 부정으로 표현한다는 것자체가 그러한 긍정과는 다른 표현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영화가 나쁘지 않았어" 라는 표현은 "영화 너무 좋았어!!" 라는 표현과 전혀 같지 않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다.
soso, 그냥 그래 즉 "약한 긍정" 이거나 심지어 "약한 부정" 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쁘게 예측했던 사람은 "약한 긍정"이 되고, 좋게 예측했던 사람은 "약한 부정'이 된다.
마트에 갔다가 집에 오면 에너지 레벨이 낮아진다.
가만히 있는 것과, 어딜 나갔다 들어오는 것은 차이가 있다.
힘이 빠진 상태에서는 무언가를 하기 어렵다.
또 다시 부정에 빠질 확률이 더 높아진다.
이러한 논리를 알고 있을 때 많은 것의 진실을 알 수 있다.
1. 고통 속에서 그것을 노력으로 극복해서 성공한 사람이 ( 부정을 부정함으로써 ) 위대한 사람이라는 논리는 완전히 틀린 것이다.
그사람은 겨우 본전을 찾은 것이며, 다른 사람보다 쓸데없이 많은 에너지를 써서 성공한 것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전쟁 반대 시위, 프랑스 혁명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지지 않으려는' 수비적인 태도로 가오를 잡는 것은 매우 허접하다.
노이즈마케팅, 욕하는 할매 가게, 츤데레 이런 컨셉들은 근본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2. 그렇기에 부정이라는 것은 단 한번도 들여다볼 필요가 없는 백해무익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극복을 하더라도, 이전의 에너지를 돌려받지 못한다.
일부러 고통에 빠지는건 그 어떠한 경우도 용납되서는 안된다.
군대에서 부조리와 불합리한 훈련들은 절대로 강한 군인을 만들지 못한다.
원래 강했던 소시오패스들만 살아남아있을 뿐이다.
3. 그렇기에 부정을 극복하려고 하는게 아닌 포기가 옳다.
내가 아무리 억울한 일에 빠졌다고하더라도 그것을 원래대로 되돌리려고 노력해서는 안된다.
그저 인정하고 천천히 받아들여야한다.
시선을 원래부터 긍정이었던 것으로 돌려야한다.
한번도 부정이지 않았던 순수한 것을 선택하는 기회로 삼아야한다.
4. 한번 크게 내려간 주식이 더 높이 올라갈 반등의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신병이다.
다시 올라가더라도 대부분 본전을 복구하는 수준에 머무를 뿐이다.
단 한번의 하락도 끝임을 알아야한다.
그 상태의 논리가 완전히 사라질정도로 긴 시간이 아닌이상 언제나 그럴 확률이 높다.
5. 그렇다면 이중 부정의 역함수는 어떨까?
즉 주식의 하락이 '부정' 이 아니라
주식의 상승이 '부정' 인 완전히 뒤바뀐 세상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절대 이 주식은 오르면 안돼!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공매도세력같은
그렇게 따져보면
한번 높이 올라갔다가, 바닥으로 내려온 것들도 '이중 부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차트는 마치 타락천사 루시퍼와 같은 것들은 완전히 망해버리고 죽어버린 것 같지만
사실상 엄청난 에너지를 품고 있는, 완전히 좋은 투자처가 될 수 있다.
절대 긍정이 될수 없는, 유리벽에 막혀서 도저히 내려갈래야 내려갈 수 없는 에너지를 품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이러한 형태의 이중 부정은 계속해서 부정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적어도 본전은 뽑을 수 있는 수학적으로 최고의 투자처다.
실제로 2차대전 전범 국가인 독일 일본이 패망하고도 전혀 망하지 않고 오히려 선진국으로 이어지는 원리와도 같다.
6. 그렇기에 무언가를 시도하고 잘하다가 실패한 사람에게는 엄청난 에너지가 있다.
다시한번 그것을 시도하는 것이 수학적으로 진실이다. 물론 올바르고 건전한 방향이라면 말이다.
물론 이중 부정이 완성되려면, 작은 실패가 아니라 완전히 거의 다 망해버린 상태임을 알자.
또한 끈질기게 실패하지 않으려고 했던 진심도 있었어야 할 것이다.
7. 줬다가 뺏는 것은 그렇게 나쁜 일이 아니다.
흔히 말하는 배신들.
착한 척을 먼저 한다음 그다음에 나쁜 짓을 해버리는 것이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일이라고들 한다.
단테의 신곡에서도 가장 밑에 있는 9번째 지옥이 배신이다.
하지만 그것은 '뺏은 다음 주는' 악마들에 비하면 그렇게 나쁜 일이 아니다.
(가난포르노를 찍기위해 아프리카아이들을 가난하게 만든다음 깔짝깔짝 도와주는 기만)
그러니 우선 친절하자. 뺏길 용기를 내자. 그러면 에너지를 품는다.
나를 배신한 사람도 어느정도 용서하자.
그래도 내가 가지고있던 시간이 있기는 있었으니.
책도 대여하고 자동차와 월세집도 대여할 수 있다. 그건 그렇게까지 나쁜게 아니다.
배신을 무서워하면 정말 그 어떤 사람 어떤 상황도 함께할 수 없기에 완전한 패배를 만들게된다.
뒤에서 그렇게 음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음한건 음한 만큼 타격이 적기 때문에 적당히 무시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실질적인 타격을 주는 적들의 공격만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
또한 너무 빨리빨리 발전하려고 노력하다가 인간성 쏙 빨아먹은 헬조선을 만들어버린 이전 세대의 사람들도 용서해주자.
최상책은 절대 아니겠지만 우선은 발전시켰으니, 고마운 것이다.
다시한번 이어나가기만 하면된다.
8. 나의 큰 기쁨들을 다시한번
단순히 부정적인게 아니라, 예전에 정말 큰 긍정, 기쁨이 있었는데 떨어진것들
그런것들은 위로 올라가려는 편향들을 가지고 있다.
나에게 있는 그런 기쁨의 근거와 역사들을 모두 싸잡아 긁어 모아서 하나로 뭉치게만들어야한다.
그리고 단한번도 큰 기쁨을 주지 못했던 부정편향적인 것들은 모두 방출하고 폐기하면된다.
그런것들은 결국 어린시절의 꿈으로 이어진다.
물론 기쁨이 많으면 많은 곳일수록 좋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큰 기쁨이 단한번이라도 존재했었다면 슬픔이 있떤말던 고통이 있떤말던 상관이 없다.
이와같이 긍정적인 것이나 부정적인 것은 어떤 순서로, 어떤 선후관계와 맥락으로 이어지는지에 따라 선악이 완전히 뒤바뀌는 특성을 지니므로, 단순히 현상만을 흑백논리로 판단하는게 아니라 전체적인 맥락을 분명히 파악하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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