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하나만으로 뭔가를 할 수 없다.

불은 탈만한 것이 없으면 꺼져버린다.

 

세상에 불편한 것과 문제는 정말 많다.

계속 생각하다보면 숟가락으로 밥을 퍼서 입에 넣는 것도 나에겐 불편한 문제이고 고통이라는 극단적인 멍청한 생각까지 할 수도 있다.

누군가 나서서 '학교 교육을 바꾸겠다' 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자기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모든 사람이 그것을 지속할 수 있을까?

 

어떤 문제는 자기에겐 얕을 수 있다. 

불편한건 분명하지만, 그냥 안해버리면 그만인 것도 있으며

고통스러운건 맞지만 어느정도 참을 만한 것도 있다.

또 어떤 것은 나에겐 특별히 고통스러워 너무 당연하게 피하게 되서 오히려 얕은 문제가 되는 역설적인 상황도 있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는 그 문제가 너무나도 깊을 수 있다.

너무나도 필수적이고, 일상에 맞닿아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것.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 벗어날 수 없는 것.

그것이 강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오직 단 하나의 이유다.

받은 것이 있고, 가진 것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학교교육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사람의 자녀가 이제 막 5세, 6세 되는 나이라면

그 사람의 노력여부에 따라 그 효과를 매우 직접적으로 자녀가 누릴 수 있는 일종의 게임 판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반대로 교육이 잘못되었을 때 가장 큰 불이익을 받는 것도 그 사람이다.

게임 안에 있는 것이다.

잘하느냐 못하느냐.

그렇기에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서 큰 분노와 에너지를 생성할 수 있다.

너무나도 큰 화는 오히려 잠잠하며 하얀색을 띈다.

 

뭔가가 크게 보이는 것이다.

뭔가가 크게 보이려면, 그것을 볼줄아는 실력을 받은 것이고, 누군가에게 좋은 것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하면 정말 좋을 것이라는 것을 아는데 ( 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할만한 누군가, 무언가가 있다는 것 )

그런데도 저렇게 쓰레기같이 하고 있다? ( 분노의 에너지 )

 

그 두가지가 합쳐져서 지속할 수 있다.

분노만이 아닌,

감사의 대상에게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고싶은 조금은 애절한 마음,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주고싶은 마음이

분노가 이상한 오발탄이 되지 않게 하고 지속성을 만든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선 아무것도 만들어질 수 없다.

이유와 논리, 혹은 사람과 사람이 '이어졌을 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절반의 정답을 맞춘 감사의 대상이 나에게 무언가를 주었을 때만

나는 그 절반을 끼워맞출 수 있다.

 

어떤 분야에 종사하고 싶다는 마음.

혹은 어떤 나라에 살고싶다거나 어떤 직장에 입사하고싶다거나 뭐가 되었건

그 마음이 든 단 하나의 이유는 ' 그 분야에 멋진 것이 나에게 무언가를 주었다'

즉 감사할 대상이다.

 

그저 내가 그것이 해보고싶다거나, 멋있어보인다거나 원래 성격이 그렇다거나 하는 저렴한 소리가 아닌

너무나도 확실하게 현물적으로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거기에 대단하고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디터람스가 말한 것처럼 새로운 것을 하려고하는 게아닌 기존의 것을 고쳐서 더 낫게 만드는 것이 인간의 올바른 방향이다.

먼저 감사를 찾아야한다.

오직 받은 것만 이어나갈 수 있다.

아무런 연관도 없는 남의 비밀번호를 맞추는 것이 암호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처럼 

무언가가 먼저 있고, 그것에서 우주가 생성되는 것이다.

먼저 무엇이 관찰되고 인식되고나서야 비로소 그 반대쪽의 것이 생성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먼저 줘야만, 그것에 대해서 보답을 하기 마련이다.

돈을 벌기 위해선 먼저 혜택과 제품을 줘야한다.

그런데 내가 뭔가를 받지도 않았는데 준다? 

분노의 대상을 사랑의 마음으로 용서한다?

영화 밀양에서 나온 전도현처럼 고꾸라져서 토하고 미친년되기 딱 좋은 일이다.

오직 받은 것만 줄 수 있다.

그렇게 짜여져 있다.

 

분노만 있는 곳에선 분노만 하면 그만이다. 딱히 내가 개입할 것 없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면 그만이다.

그 분노의 대상과 협력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이 종결된다. 그것으로 끝이다 더이상 개입하면 오히려 내가 화를 입게 되기 마련이다.

 

또한 반대쪽인 정말 선하고 혜택을 받는 것들과는 그저 같이 있으면 그만이다.

그것에 대해 혜택을 누리면 그만이다. 그것과 협력함으로써 종결된다. 누군가가 친절하게 대해준다고해서 곧바로 고백을 박아버린다거나,

뭔가가 좋다고해서 오타쿠 새끼처럼 거기서 알박기를 하게 되면 

나는 그 혜택을 그 순간 끊기게 되는 것이다. 꽃이 아름답다고 꺽어선 안된다.

 

내가 해야할일, 내가 가야할 곳은 오직 감사와 분노가 조합되어있는 곳이다.

고마운 점도 있지만, 부족한 점도 동시에 있는 곳.

자기자신도 그렇게 바라봐줄 수 있어야하며

그렇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나 분야에서만 머물러야한다.

 

어떤것의 이야기가 끝나서 그저 분노만이 남게 되었거나

혹은 좋게 끝나서 혜택만들 받는 선한 관계로 남게 되었다면

더이상 거기에는 머무를 이유가 없다.

 

또 앞으로 가는 것이다.

감사와 분노가 동시에 소용돌이 치는 곳으로 발을 옮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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