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7cQy6Q5kXC4&ab_channel=%ED%99%8D%EC%9D%B5%ED%95%99%EB%8B%B9 

 

 

윤홍식 선생님께서는 메이커운동을 좋게 바라보시지만, 미국식으로다가 차고에서 기계를 뚝딱 만들어버리고 용접을 하는 문화 자체는 우리에게 없기 때문에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씀하신다.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고 엔지니어링하는 문화, 자료, 인프라, 공간, 돈 등도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미국식 메이커문화는 [엄청난 메이커가 된 개인]이 기업과 맞다이를 떠서 이길 수 있을 정도의 어떤 '창조적 산업전사' 가 되버리자 하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마크 해치의 '메이커 운동 선언'이라는 책에선 이러한 전사가 되어 군대에 입대하라고 말을 한다.

엔지니어링 공부는 물론이고 엄청난 지식, 유통, 판매 등에 대해 당연하고 쉽게 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기업이 들이는 돈 보다야 적겠지만 엄청난 비용이 필요한 것이다.

책에 나오는 메이커들과 같이 박사학위를 가지고있거나 독보적인 경력, 기술들을 가진 사람들이 가진 부가적 비용들 또한 엄청나게 큰 비용이다.

메이커페어 영상들을 보면 일상생활에 전혀 쓸모가 없는 애들 장난같은 제품들이나 엄청난 하이테크를 적용한 예쁜 쓰레기들이 많은 이유는 아마 올바른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메이커운동이 취미적이거나, 교육적인 것에 머무르는 이유이다.

자본이나 기술력,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쓸모없는 취미에 머물고 그반대에 있는 사람은 자기 욕심을 충족시키는 쓰레기를 만들거나 할 줄 아는게 많으니 교육의 개념으로 들어간다. 극과 극의 앙상블이다.

시작에는 좋을지언정 결국 그것은 정답이 될 수 없으며 보편적인 문화가 될 수 없다.

 

그들에겐 아직 '사회'라는 것이 입혀지지 않았고 고려하지도 않은 '개인'만 존재할 뿐이다.

모든 것을 이겨내고 아무것도 자기를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 슈퍼맨 같은 존재가 되고자하는 신자유주의 사상과 크게 다를바 없다.

제작할 수 있는 도구를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공유하는 것이 '사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메이커스페이스를 사용하는데 돈을 조금이라도 냈다면 그건 공유가 아니라 싸게 판매한 상품에 불과하고

돈을 내지 않고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용자와 공급자 정확히 그 두명이 이루고 있는, '사회'라고 말해선 안되는 그저 개인과 개인의 좁은 연대에 불과하다.

그것을 그저 공유했다고해서 잘난 마음에 자기 욕심이나 채우는 물건을 만들면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공유는 가격이 0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마치 핸드폰 가격이 분명히 0인데, 언젠가 돈백만원을 줘야만하는 사기와 같다.

우버나 에어비엔비도 마찬가지다.

자기집을 남들이 하룻밤 머물 수 있게 하는 것이 마치 집을 거의 공짜로 얻은 느낌이 들 수야 있겠지만, 그다음날 짐싸고 나와야한다. 그리고 다시는 영영 들어올 수 없는 원래의 상태로 회귀한다.

그게 '공동 소유' 가 되지 않는다. 빌려쓴 것이고 빚쟁이가 된 것 뿐이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어떤 회사의 주식을 1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가 그 회사의 주인이 되는 공동소유를 가지지 않는다. 회사에 들어갈 수 없고 그 어떠한 명령도 내릴 수 없다. 적은 돈으로 회사의 주주가 될 수 있는 영광이나 권력을 누릴 수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반대로 적은 돈으로 회사를 맨날 신경쓰고 감시해야하는 입장이 된다는 것은 말하진 않는다.

투표도 마찬가지다.

한표한표가 소중한척은 하지만, 사실 내 한표는 중요하지 않다. 정확히 딱 한표만큼의 가치가 있다. 그 말은 상대적으로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나는 가치없는 것을 얻지만 (투표를 참여했다는 명예) 그로인해서 투표로 인해 당선된 사람의 모든 지배와 명령을 받는 전체적인 종속관계가 생성된다.

 

이런 것들은 공유라기보다는 그냥 사람이 많은 곳으로 들어간 것 뿐이다.

그냥 사람이 많은 곳에 가보니 땅을 '같이 밟고있다'. 그뿐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많으면 내 생활공간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진정한 공유는 (share) 는 전체를 향한 개인의 메시지다. 실제로 커뮤니케이션의 어원은 shared 이기도 하다.

메시지는 내 것을 완전히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다.

완전한 소유권 이전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지식을 공유했다면,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 지식은 완전히 소유된다.

그렇다면 그 지식 공유를 할 때 돈을 얼마를 받았던 말던 상관없이, 공유를 한 것이다.

곧바로 공동소유가 되는 것이다.

줬다 뺐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공유된다.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부동산이나 물건은 그런것이 원래는 불가능한 것이다. 물성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물건이 '복사' 되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물건도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된다.

공유해준 사람, 자기것을 떼어준 사람에게 사람들은 돈을 주고 명예를 주고 인정해주고 살 수 있는 힘을 준다.

자기자신의 세상의 일부를 남에게 주었을 때, 공유가 성립한다.

크고 좋은 것을 줄 수록 고마움이 생성된다.

지금까지 물건을 판매하던 상인들도 사실은 이미 어느정도 공유하고 있던 것이다. 이기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된다.

 

하지만 함부러 내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것을 주어선 안된다.

양산되거나, 복사되거나, 넘쳐나는 것, 나에게 쉬운 것을 준다. 그게 공유다.

 

메이커운동에서 만들어낸 것들은 모두 남에게 줄 필요도 없고 가치도 없는 쓰레기같은 것들이기에 그것은 공유가 되지 못한다.

무언가를 '만들었다' 라고 과연 할 수 있을까?

 

윤홍식 선생님이 말하는 문화 메이커란 무엇일까.

나는 '그게 무언가를 만들되 가치있는 것을 만들자' 라고 받아들이려고한다.

가치있다는 것은 내가 아닌 사회에 공유할 수 있는, 사회가 소유하고자하는 것들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하고 움직일 수 있게 해 개개인들이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올바른 메이커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기 위해서 발명의 개념이 당연히 필요하다.

그냥 만드는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을 만드는 발명가, 디자이너, 기획자들이 만드는 것이다.

문화가 입혀진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어렸을적부터 차고에서 미친듯이 무언가를 만들어본 공돌이나 원래부터 손재주가 좋았다고 웃으면서 말하는 엔지니어들이 만들꺼면 애초에 메이커스페이스를 일반인에게 왜 사용가능하게 할 것인가 그럴 필요조차 없다.

활용가능한 최소한의 단위로 무언가를 만드는 브리콜라주 개념을 도입해 어떻게든 만들어서 도움이 되는 것을 만들어야한다.

조금 허접하더라도 우선 만들어내는 문화를 만들어야한다.

그것이 기업에서 만든 것처럼 완벽하지 않더라도 기능하고 작동하고 필요성을 입증한다면

그때 부터는 기업체에 의뢰해서 다시 좋게 만들면 그만이다. 

 

메이커문화는 굉장히 순수하고 본질적인 창업자, 발명가의 치열한 활동이 되어야만한다.

즐거움이나 파티, 학생들의 교육장소, 아이들의 놀이터, 공돌이들의 자위행위 따위가 되어선 안된다.

애초에 그들이 들어올 필요도 없는 곳이다. 완전히 극반대로 번지수 잘못 찾았다. '자연에 가까운' 그들이 어떻게, 문화를 만들겠는가?

 

그리고 절대적으로 무슨 수익없이 만든 것을 공유하는 것 따위를 지껄여서는 안된다.

진정으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더 큰 돈을 만들어내야만한다.

집집마다 3d프린터가 보급되어 ^공유된^ 도면을 다운로드받아 스스로 자급자족을 한다?

장담하는데 그런시대가 와도(올 것 같지도 않지만) 그 도면은 그에 걸맞는 가격이 책정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새로운 도면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오랜 인류 역사 동안 사람들은 자기 삶에 필요한 물건을 구매해서 쓰거나 타인에게 맡기는 경우가 없었다. 왕족이나 귀족을 제외한 대다수는 먹거리를 위해 농사를 짓고, 요리를 하고, 삶에 필요한 도구들을 직접 만드는 노동으로 채워졌다. 지금과 같은 생활 방식은 기형적이다. 인공지능, 로봇이 발달해도 인간이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직접 뭔가를 제작하는 욕구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제작'이란 개념을 '판매할 물건을 만드는 생산 활동'에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을 만드는 행위'로 재정립해야 한다.
[사물에 수작부리기] 217쪽, 김성원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손의 감각과 적정기술」에서

 

대량생산의 시대에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을 만들지 않는다.

왜냐면 크고 쉬운 것만 만들어 댈 것이기 때문이다.

풍요로움은 빠짐없이 넘쳐나는 것이다.

작은 부분, 쉽게 팔지 않는 것들을 만들어 내서 가치를 창출해야한다.

그렇기에 풍요로움을 만드는 것을 제작하기 위해선 개개인들이 필요하다. 

메이커 운동은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개념이 되어야한다.

기업과 맞다이를 떠서 엄청난 제품을 만드는 ^메이커^가 아니란 말이다.

기업과 상생할 수 있어야만한다.

 

정리하자면 메이커스페이스가 ^공유^되었다고 해서 모든 인간이 곧장 파티를 즐기는 메이커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사회에 '공유' 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것이 '메이커'라고 말하고 싶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공유지인 지구에 태어났다고 해서, 인터넷에 지식들이 넘쳐나게 공유되어있다고해서, 내가 대단해지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졌다고해서 대단한게 아니라, 주어진 무언가로 만드는 사람이 대단한 것이다.

그저 물건의 형상을 가지고 있다고 대단한게 아니라, 문화를 만드는 물건이 대단한 것이다. 

나혼자 모든 것을 알거나 힘을 키워서 누리는 자유도 있지만

남들에게 공유하여 모든 남들이 곧 내가 되는, 그것이 너무 추상적이라면 그 다른 사람들의 집에 방문이라도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 더 옳고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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