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격이 0원인 것도 공짜라고 부르지만
가격이 있는 것도 공짜라고 부르기도 한다.
거의 공짜네, 완전 공짜네 라며 말한다.
만약 가격 200원 짜리를 샀는데 그로인해 5만원의 가치를 얻었다면 그것은 비록 200원이지만 공짜다.
말만 그런게 아니라 테크니컬하게 공짜다.
갓 태어난 아이는 공짜로 산다.
부모가 만들어준 자리, 부모가 제공하는 음식을 공짜로 먹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않아도 된다.
사람 마음도 아이들에게 주는 건 기억도 나지 않고 마음에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공짜로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것을 탐탁치 않게 본 파충류적 인간들은 어른이 되는 것은 책임을 지고 힘들게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서 본 예시처럼 어른이 된다고 해서 공짜로 살 수 없는게 아니다.
부모와 가족이라는 작은 테두리의 한계성이 숫자 0을 계속 만들기 어려워진 것 뿐이다.
노력이던 비용이던 10을 주고 3만을 얻는 일을 하기만 하면 된다.
1만명이 좋아하고 1만명이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과 1억명이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한 사람은 차원이 다르다.
일의 양은 똑같아도, 그것이 양산되고 자동화되어 퍼지는 속도가 다르다.
수많은 사람과의 접점을 찾아낸 사람은 공짜로 살 수 있다.
내머릿속의 한계인 공간축에서의 공짜가 아닌 무한한 시간축에서의 공짜다.
아무일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자동으로 이루어진다는 영성인들의 말은 명백한 사기다.
우리가 추구해야할 것은 일은 뭔가 했지만 아무일도 하지 않은 것 같은 지점을 찾는 것 뿐이다.
공짜는 아니지만 공짜인.
하지않았지만 한것 같은 무위적인 삶을 찾는 것 뿐이다.
현실이라는 물리적공간이 너무나도 느리고 더딘 것 같더라도 자유는 바로 이곳에 있다.
국가가 세금을 걷듯 자유로운 천국에서도 통행료와 입장료를 받는다.
그걸 내야 나에게 준다. 내가 못하는 걸 해준다.
나도 해야 다른 사람도 나에게 준다.
아니 내가 왜 해야돼? 라고 생각이 들 수 있다.
나는 축복받으며 태어난 사람인데 내가 왜 해야 돼?
너가 해주면 안돼?
해줘!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공짜 자판기를 눈 앞에 두고
내가 먹고싶은 음료수 버튼을 누르는 것 정도는 내가 해야한다.
그것조차 사라지면 모든 것이 소급되어 무로 돌아간다.
모든 것이 0에 수렴하여 마치 생각 속에서처럼 엄청난 속도를 가지지만 아무것도 없는 허무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시간과 공간이 있는 이유, 느리고 더딘 현실이라는 것이 있는 이유는 우리를 어렵고 힘들게 만들기 위해서 라기보다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서이다.
듣기 좋은 명곡 중에 5초 짜리나 10초짜리는 없다. 하물며 0초짜리는 존재할 수 없다.
충분한 시간이 들어가야 그 때부터 시작이다. 그때부터 인정한다. 그때부터 느껴진다.
느리고 더딘 시공간이 있어야하는 또 다른 이유는 누군가 세상을 멸망시키고자 생각하는 순간 세상이 멸망되지 않도록 장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느림과 더딤은 나쁘기만한 것이 아니라, 나를 지켜주는 성벽이 될 수 있다.
생각한대로 이루어지는 것에 가장 가까운 아이들 세계에서 나쁜 아이들이 가장 잔인한 짓을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 학교 폭력, 동물살해 등 ) 그런 것을 보면 어른세계처럼 제발 시간이 느리게 가고 더디게 갔으면 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생각하는 순간 이루어진다면 허무의 바다에 빠진다.
지금 내 노력이나 희생, 공부 등이 자파닉 버튼을 손으로 누르는데 까지의 노력 밖에 안되는 말도안되는 작고 싼 것이란 것만 기억하자.
힘들다고 어렵다고 겁박하고 협박해도 이것이 너무나도 작은 것이라는 것만 알자.
그 싼것만 해도 공짜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만 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