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부는 금과 은의 양이 아니고 사람의 능력이다 - 애덤 스미스 <국부론>

 

원피스 - romance dawn

 

 

진짜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금이나 은, 다이아몬드 같은 재화가 진짜 보물이 아니라면?

정확하게 그것의 여사건인, '노동'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표현하면 '힘든 것' 이고 힘든 것이란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을 때를 의미한다.

 

결핍이 곧 보물이다.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을 때 사람은 움직이고 활동함으로써 그것에 대한 능력을 얻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 만남, 협동, 스토리 등이 컨텐츠가 된다.

 

금·은·다이아는 이미 결정된 것이다. 

하지만 결핍이자 미완성되어있고 비어있는 곳은, 양자역학의 관점에서도 에너지, 변화, 창조, 가능성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영성 공부에서 말하는 '이미 다 가진것처럼 행동하라' 라는 것이 완벽하게 이해된다.

'나'라는 것은 정말로 결핍 덩어리이고 세상은 쓰레기로 가득하며, 우주라는 텅비어있고 차가운 것이 무한하게 펼쳐져있다.

나의 장점은 찾아볼수 없고 실제로 가지고 있는 재산은 전혀 없어보인다.

하지만 단점만큼은 완벽하게 꼽을 수 있으며, 나에게 부족하고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큰지는 제대로 말할 수 있다.

나는 정말로, 부로 가득가득 차있으며 어마어마한 풍성함 속에 있는 것이었다.

 

 

 


 

 

현대의 경제학은 '주어진 자원은 희소하며,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 라는 방식의 메커니즘을 따르며

엄청나게 스마트한 '선택'을 잘하는 사람이 올바른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는 '주어진 자원은 무한하며, 인간의 욕망은 유한하다' 라는 방식이다.

결핍이 곧 자원이자 부이기 때문이다.

결핍이나 힘든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전혀 아니다.

그렇기에 그 어떠한 것도 끌어당길 필요 없이,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완성되는 메커니즘이다.

단한번도 선택하지 않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자기자신을 유지한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활동 자체가 부다.

내가 움직이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다.

조작감이자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자산이다.

그렇다면 가난함에도 진심으로 활짝 웃을 수 있다.

앞으로 해야할 활동이 그렇게나 많이 남아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결과가 빠르게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가질 수 있다.

최대한 늦게 도착하도록 일부러 길을 돌아가는 것도 좋다.

아니 그렇게 돌아가는 사람이어야만 큰 부를 얻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생명연장을 위한 슈퍼나노기술보다도 더 수명을 제대로 늘리는 방법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의 것들은 완전히 틀렸다고 확신할 수 있다.

누군가가 불쌍해서 도와준다? -> 그 사람의 활동(부와 재산)을 강탈하는 범죄다.

어린아이가 잘 못하는 것을 과보호해서 도와준다? ->  그 사람의 활동(부와 재산)을 강탈하는 범죄다.

누군가 나를 도와줬으면 하고 생각한다? ->  나의 활동(부와 재산)을 상납하는 노예가 되는 길이다.

로또 당첨되거나, 어떤 결과에 도달했다고 엄청나게 날뛰듯이 기뻐한다? ->  나의 활동(부와 재산)을 땅에 버리는 일이다.

공략집을 보고 게임을 하거나 인생을 살아간다? -> 나의 활동(부와 재산)을 약탈하는 일이다.

누군가 만들어둔 발판을 타고 올라간다? -> 나의 활동(부와 재산)을 거세해버리는 일이다.

 

 

어딘가에 도착했다면 그다음에 할 일은 또다시 활동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다.

정착하는 순간 죽는다.

결정화 되는 순간 굳어서 죽는다.

 

 

 


 

 

 

 

루피가 해적왕이 되는 것을 마치 확신하듯이 믿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저 말도안되는 작은 배를 타고 혼자 시작했다는 그 사실 자체에서 올 수도 있다.

혹은 누구도 꿈꾸지 못하는 비웃음 당할정도의 불가능한 것을 꿈꿨다는 그 사실 자체에서 올 수 있다.

그 누구도 저러한 결핍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게 그 격차와 차이만큼이 에너지로 확실하게 전환된다.

거리가 멀수록 에너지가 된다.

그렇다면 내 결핍이 크면 클 수록 더욱 더 확신할 수 있는 기제로 다가온다.

죽음과 가난앞에서도 웃을 수 있는 명백한 이유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이유는 당연히 결핍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하나의 가치를 추구하는 경쟁을 하는게 아니라, 각자의 개성과 환경에 따라 달라야만 한다.

돈을 추구한다면, 활동은 거세된 상태이므로 정답이 아니다.

돈 즉 타인의 힘이 아닌 내가 움직이는 활동을 말한다.

 

나에게 가장 부재한 것을 내가 자산으로 삼으면 그만이다.

이미 선택되어있고, 그 양과 미래조차 정확히 그려져있을 수 있다.

이미 선택된 것을 선택하기만하면 그만이다.

누군가가 쥐어주는 결핍(노동)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결핍을 바탕으로 활동을 하면된다.

나를 선택하면 된다.

 

나에게 부나 재산을 인풋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게 아니라

나에게 있는 가능성을 끄집어내서 아웃풋 시키는 것이 정말 신나는 일이다.

신이 나오는 일이다. (에우다이모니아 = 조이보이)

오직 결핍과 풍요함 사이에서만 재미가 생길 수 있다.

 

 

 

 

 


 

 

생각 출처 - 홍기빈 선생님의 <위기의 경제학>

https://classe.ebs.co.kr/classe/detail/134906/40009039

 

클래스 e (3) : 위기 이후의 경제학 / 홍기빈

예고 없이 찾아온 위기로 생존을 위협하는 공포가 현실로 다가왔고, 우리의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는 갈림길에 서 있

classe.ebs.co.kr: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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