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들은 우물가에 얼굴을 가까이 비춰보며 오직 자기자신을 바라본다.
반대로 자기 비판을 하기 위해서는 멀리서 나를 지켜봐야하며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것들이 같이 씬에 등장한다.
내가 부족하니까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며,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를 지키기위해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모드로 들어간다.
나를 스스로 갉아먹었기 떄문에, 그 공간 만큼에 다른 존재들이 들어온다.
타인이기도하며, 전혀 달라진 나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비로소 즐거움이라는 개념이 생긴다
여러가지가 있으며, 매일 새로운 것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사람의 비판을 받아서 무언가를 고친다거나 바꿨다면,
그 결과로 고쳐지거나 바뀐 것이 정말 좋은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정말 좋아진게 맞는지, 혹시 또 다른 부분이 나쁜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기도 한다.
좋은것을 퍼줘도 고마운지 모르고 무감각한 애들의 상태와 같다.
하지만 자기자신의 비판에 의해서 무언가를 바꿨을 때.
정말로 그것이 이전과 다르고, 정말로 효과적이고, 정말로 좋은 것인지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다.
24시간 나는 나이기 때문에 그것이 정말로 나아졌을 때, 어떠한 의심도 들지않는다.
그렇기에 우리가 도달해야할 최고의 지점인 '자아 존중감'을 가질 수 있다.
내가 나를 비판해서 결과적으로 좋은 것으로 바뀌었다면
그것은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다.
바뀐 나자신을 존경할 수 밖에 없다.
멍청하고 부족한 나를 내 자신이 정말로 '직시' 했었고
그것과 지금이 정말로 차이가 난다는 것을 또한 24시간 '직시' 하고 있기 때문에
24시간 자아존중감이 흘러 나오는 메커니즘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철저하고 엄격한 자기 비판이야말로 24시간 추구해야할 일이다.
철저하고 엄격할 수록, 그것이 반대되었을 때 강한 자존감을 가질 수 있다.
쓸데없는 것을 깎아내야, 나에게 있는 좋은 것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법이다.
또한 내 한계를 맛봐야 다른사람의 도움이 얼마나 고마운지도 알게 된다.
나는 절대 이 집단 자기연민에 빠진 세상에서 흐물흐물해져서 죽고싶지 않다.
즐겁게 살고 싶다.
나를 깎아내서 수많은 것을 들이고,
내 얼굴따위에 빠져있는게 아니라, 항공뷰로 다양한 세상을 구경하고 재밌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