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적 관망 : 때가 올때까지 기다린다.  의심이 전혀없는 조건이 부합할 때까지 기다린다.

적극적 관망(확률적 관망) : 만약 승률이 60%인 것이 있다면, 그 것에 많이 노출을 시킬 수록 확실한 승리를 얻을 수 있다. 확실한 승리가 보장되었을 때, 지던 말던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고통이 고통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계속해서 노출만 시키면 그만이다. 아무 반응을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가만히 놔두는것이야말로 개입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필승법이 되는 때다.

 

 

 

 

수동적 관망은 고통과 두려움에 최대한 노출을 시키지 않는 방법이다. 

이순신 장군님처럼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올때까지 최대한 지연시키고 기다리는 방법이다.

 

적극적 관망은 오히려 정반대로 최대한 많은 노출을 통해 이득을 얻는 방법이다.

어짜피 이길 테니, 될일은 어짜피 될 테니 아무런 반응없이 관망할 수 있는 방법이다.

 

둘 중 무엇이 맞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둘다 맞다.

 

수동적 관망을 통해 기다렸다가, 때가 왔을 때 공격을 시작하더라도 예상이 틀릴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기 때문에 다시금 두려움이 올라온다.

차라리 둘다 적용해버리면 좋을 것 같다.

수동적 관망을 통해 기다릴때 너무 확실하게 100% 완벽함을 추구하면 완전히 아무것도 못하고 기회를 놓쳐버릴 수 있다.

 

그러니까 수동적 관망을 통해 아주 약간의 확률적 우위가 확보 되었다면

그다음 스탠스로 적극적 관망으로 바꾸는 것이다.

 

수동적관망으로 51%~85%의 확률을 확보한 뒤,

그다음부터는 그 전략을 통해 계속해서 노출을 시켜서 또다시 적극적 관망으로 전환시킨다.

 

믿음으로 기다렸다가, 믿음으로 싸운다.

 

어떤 상황에서는 별수없이 피하지못하고 싸우게 될 때가 많은데, 그럴 때는 하나님이 이미 기본 베이스로 인간에게 승률을 51%라고 설정해놓았다고 생각하고 그 노출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강제로 군대에 끌려가는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의 경우, 어쩔 수 없이 직장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 경우다.

실제로 세상은 가만히만 있어도 복리로 상승하게 되는 개념들이 매우 많고, 아주 단순하고 기초적인 것만을 반복해도 큰 힘을 얻게되는 메커니즘이 정말로 존재한다. 머리로 적당히 생각하면 되고, 몸을 적당히만 움직여도 문제를 풀 수 있는 그런 기초적인 승률이 확보되어있다.

 

아니 공평하게 동전던지기처럼 50%라고 생각해도 고통을 별 데미지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전체 인생으로 생각했을 때 죽지만 않으면, 즉 양이 충분히 많을 때는 50%의 승률이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을 자명하게 이해할 수 있으므로, 피해의식을 느껴서는 안된다. 정말로 공정하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 해도 되고, 단점이 있으면 그것을 활용해버릴 수도 있는 둥근 세상이 있기 때문이다.

 

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면 그때부터라도 수동적 관망으로 들어갔다가, 한발자국 뺐다가, 다시 승률을 확보하여 들어가면 된다.

수동적 관망은 반드시 승률을 높일 수 있고, 적극적 관망 또한 처음부터 손해볼 것이 없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믿을 수 있다.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다.

질과 양이 모두 나의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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