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점은 흐름 속에서 존재하지 않고
오직 정지한 세계에서만 존재한다.
가령 아무것도 개선할 생각이 없는 감독이 선수들을 평가할 때 장단점을 기록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테니, 그 시간을 칼로 자르듯 정지해버린 세상에서는 길고 짧은 것이 차이가 보이기 마련이다.
야구에서 도루를 정말 못하는 선수가 있으면 ,
도루를 안시키면 그만이고 다른 선수에게 맡기면 그만이다.
대체 왜 단점이라는 것이 생길 수 있을까?
도루를 반드시 해야한다고만 생각하고 기존의 전략만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만약 야구선수로써 반드시 해야할 빠따 휘두르기를 못하는 선수가 있으면 그것은 단점이 아니라 그냥 야구선수를 그만 하거나, 빠따 휘두르는 연습을 하면 그만이다.
설거지 거리가 있는게 '단점' 인가?
그저 해야할 일일 뿐이다.
흐름 속에서, 시간 속에서 공동체 속에서
단점은 존재할 수 없다.
언급될수 없다.
그저 해야할 일이 있을 뿐이다.
오직 필요가 있을 뿐이다.
단점을 극복하는게 아니라
필요을 충족시켜야할 뿐이다.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 단점을 극복하라고 해선 안되고
필요가 있는데도 그것을 그저 단점이라고 규정하고 가만히 있어선 안된다.
정리해보면
필요하다면 못하는 것이라도 잘해지게 하는 발전을 해야하는게 당연하며 필요하기에 재밌고 수월하게 더 잘해질 수 있으므로 단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해야할 일을 안한 상태가 있을 수 있을 뿐이다.
필요가 없어서 발전시키지 않은 것을 단점이라고 규정해서는 안된다. 그만큼 다른것을 키웠을 수도 있으니까.
느린것은 꼼꼼함이 될 수 있고
말이 많은 건 소통력이 좋은 것이 될 수 있다.
힘들게 단점을 극복하는게 아니라
힘든 것을 줄여나가도록 하면 될 뿐이다.
필요를 충족시키며 변화를 추구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단점은 존재 할 수 없다.
일본어에서 '마에무키(前向き)'는 '긍정적'이라는 뜻이다.
한자를 보면 앞을 향하다, 앞을 본다는 뜻이다.
멋잇는 척 장점과 단점을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것과 다르게
긍정성과 부정성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앞을 보냐, 뒤를 보냐.
전진하냐 후진하냐.
강인공지능이 엄청난 등장씬으로 등장하는 시대가 와도 두가지 중 단 하나만 존재할 수 있다.
긍정성이라는 단어 안에는 이미 단점을 활용하겠다, 단점을 단점으로 보지 않겠다는 기능이 포함되어있다.
선수의 장단점을 기록하는게 아니라, 이 선수는 어디로 나아가야겠구나. 이 선수는 이런 특성을 가졌구나. 이렇게 활용해야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그만이다.
망치의 장점을 못을 박는 것이고, 단점은 무거운 것이니 망치를 솜으로 만들어야겠다거나
망치를 최고의 경량화된 신소재로 만들어야겠다거나 하는 쓸모없는 과대망상은 모든것에서 편하고 먼지하나 없어야하는 엄마들이 할법한 과민반응이다.
망치는 충분히 무거울 필요가 있고, 그래서 기능한다.
그렇게 충분히 무겁기에, 신소재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비용이 싸서 충분히 많은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퍼져있다.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개념이 아니기에
시니컬하고 멋있게 단점을 꼽아내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장점을 발전시키고, 단점을 줄이겠다는 생각은 모든것을 아우르고 싶어하는 작은 어미새의 욕망일 뿐이다.
찌질하고 허접하며 멍청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