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아이를 낳는 것과 똑같이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게 에너지를 주는 행위다.

그 자체로 매우 공익적이다.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이기적인 것과 정반대에 있다.
완전히 이타적인 것이다.

이타적이기만 하다가 자살을 하는 경우가 아닌 올바른 이타성을 지킨다면
그 자체로 세상에게 사랑받을 존재가 된다.

무언가를 만들고 그것을 마치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허접한 생각이며 불가능한 망상이다.

이미 물리적으로 떨어져있기에 조종 불가능하다.


소유물은 돈을 주고 남에게서 산 것이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정반대다.


나의 에너지를 주어서 호구가 된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완전히 다 빨렸는데 이득보는 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애를 낳아났더니 수지타산이 안맞고 손익분기점에 다다르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당근마켓에 판매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만든 창조물은 '내 입맛에 맞는 것'이다.

나와 매우 비슷한 존재이며, 내가 좋다고 생각해서 만든 것이다.

내가 만든 도구가 설령 사람들에게 잘 팔리지 않아서 돈을 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나와 비슷하고 내가 사용하기 쉬운 것이 남아있다면 그자체로 나에게 간접적으로 이득이 된다.

내 에너지가 어디 다른데로 도망간게 아니라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지켜지는 것처럼 남아있다.

 

내 생각과 매우 비슷한 것이 늘어난다.

한마디로 압축하여 '내가 여러개가 되는 것'이다.

나의 영토가 늘어난다.

내가 많아진다.

결국 내가 편해진다.

세상에 나의 비율이 늘어난다.

좋은 창조물을 만든 사람은 그렇게 세상에서 자유를 얻게된다. 

에너지를 준만큼 에너지를 얻는다.

 

나의 몸뚱아리 하나로만은 절대로 안되기 때문에

이타성은 그렇게 나를 가상적으로 넓혀나가는 엄청난 발명품이다.

내 몸뚱아리가 아닌 제 3의 물건인 도구를 만드는 사람은 이타적이다.

반면에 모든 기술이 자기 몸안에 있는 스포츠선수는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선악을 나누는것은 아니지만 그 특성은 분명하다.

 

제대로 이기적으로 산 사람은 반드시 이타적인 것을 이어나가야한다.

조던처럼 제품을 만들어 판다거나, 스타가 자원봉사를 한다거나, 가수라면 공연만할 것이 아닌 제품으로 음반을 만드는 것이 기본적인 이타성으로의 회귀다.

제대로 이타적으로 산 사람은 그 혜택을 통해 돈이나 자유라는 이기성을 얻게 된다.

딱히 남는 것은 없지만, 굉장히 보편적인 '돈'이나 '사람' 같은 것을 얻게 된다.

애매하고 모호하지만 확실한 이득이다.

그걸로 내 취향에 따른 뭔가를 구매하면 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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