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장점은 특별히 강화시키고 단점은 노력으로 극복한다'라는 것이 굉장히 올바르고 정석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기에 하나조차 잃게 되는 매우 짧고 허접한 생각이다.

 

라면을 끓이기위해 라면사리와 스프를 동시에 넣어야하는데, 둘중에 하나만 넣었으니 아무것도 아니게된다.

둘 중에 하나를 맞췄다고 50%를 맞췄다며 기뻐하고 평타는 쳤다고 할 수 있는게 아니라,

아무것도 맞추지못한 완전한 죽음이다. 오히려 더 역겨운 죽음이다. 착한척과 올바른척은 다했을 테니 말이다.

차라리 버리면 좋을 것을 라면인척을 해서 사기를 치고 있으니 더 큰 죄악이다.

 

장점을 강화시키기 위해선, 반드시 단점을 회피할 필요가있다.

장점이 중요하고 강점을 키우라고 말하면서, 단점을 그대로놔둘 수 있는 개념은 성립하지 않는다.

집안에 도둑이 들어왔는데 나의 장점은 제빵기술이라면, 제빵기술을 열심히 하고 도둑과 열심히 잘 지내는 것을 동시에 수행해 보겠다는 소리가 된다.

도둑이 있을 때 제빵기술은 성장하지 못한다. 빼앗기기 때문이다.

도둑을 내보낸다 -> 제빵기술을 수련한다. 

두가지가 모두 반드시 순서를 지켜 실행되야만 한다.

 

이게 진짜 '강점을 강화시킨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게 진짜 '단점을 극복한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원래의 형편으로 돌아가는 회복의 뜻을 가지고있는 극복은 그렇게 작용해야한다.

원래 못했는데 무슨 극복인가? 본래라는 뿌리가 없는데. 잘하던 것만 다시 잘해질 수 있는 것이다.

땀흘리고 열심히하는 단어가 아니다. 회피함으로써 치유된다.

 

단점은 극복하는게 아니라 회피해야한다.

그것을 잘 못한다고 나를 비난하거나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

목숨걸고 돈걸고 에너지를 써서 적극적이고 의도적으로 피해야만 한다.

강점을 강화시키는 것과 아무런 차이도 없이 똑같이 에너지를 써야할 정도이다.

그런데 하물며 단점을 극복하기위해 열심히 연습하는데 에너지를 쓴다는 것은 정말 뇌가 녹아버린 사고방식이다.

 

강점을 강화한다 + 단점을 회피한다.

ex) 축구를 좋아한다 + 경쟁하는 것을 못한다. => 축구심판이나 축구 교육에 종사한다.

두가지가 모여서 개성을 만든다.

그 두가지의 변수가 모여서 내가 어떤 곳에 정착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이 생긴다.

두가지나 충족했으니 그곳에 머물수밖에 없는 희소성과 강제성이 있기 때문이다.

못먹는 감은 쳐다보지 않을 필요가 있다.

 

이런 메커니즘을 알 때 나의 단점은 너무나도 확고한 나의 재능이나 별반 다를게 없다.

어떤 곳에 철저하게 머물 수 있는 개연성, 근거를 주기 때문에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나의 행동에 단하나의 구멍도 없어야한다.

티끌 하나라도 마음에 들지 않고 단점을 극복해야만 할 수 있는 영역에 들어가선 안된다.

축구선수가 경쟁이나 공에 맞는 것을 무서워하는 말도안되는 일은 벌어져선 안된다.

그렇기에 여러가지 다양한 것이 생긴다.

축구선수 배구선수 농구선수 다 각각의 특성이 있고 그 곳을 게임으로 받아들일만한 즉 단점과 죽음이 없는 사람들이 알아서 모이게 된다.

그런 과정들이 나를 찾는 과정이다.

단점없는 나의 자리. 나의 사명. 내가 나로써 잘사는 행복의 상태.

 

나의 단점은 누군가가 채워준다.

내가 비워둔 자리에 누군가가 와서 살 수 있다.

누군가는 내 단점이 아무렇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재능으로 가지고 있다.

그사람에게 자리를 비워주고 양보하지 않고 단점에 머물며 그것을 극복하고 컨트롤하려는 것은 정말 범죄다.

ex) 젊은이들이 서비스직을 하려고하는 것^^ 극소수를 제외하고 서비스는 어른들이 더 잘하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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