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정리도 하기 힘든데 왜 남을 도와야하는가
나의 능력을 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효율이 낮기 때문이다.
우로보로스 뱀이 자기 꼬리를 쫓는 것 마냥 아무리 해도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나라는 존재, 환경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장점으로 아무리 단점을 해결하려해보았자 개념이 계속해서 돌고 돈다.
단점을 해결하면 장점이 사라지고, 장점을 극대화하려면 단점이 극대화된다.
하나의 차원에 갇힌 불쌍한 미물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남을 돕는 것은 그 남보다 적은 에너지를 통해 효과를 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남을 쉽게 도운 뒤, 그 대가로써 남이 나를 쉽게 돕는 방식을 택한 것이 인간이다.
남을 돕는게 할머니 손잡고 횡단보도 건너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은 그 업계에 도움을 주는 것이고 그 회사를 돕는 것이다.
그런데 그 회사나 업계, 분야가 나와 가까운 곳(즉각적 이득)이라면 나는 남을 돕는게 아닌 나를 위해 일하게 되어버린다.
내가 아닌 남을 도와야한다.
내 안에 문제가 가득하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도 남을 먼저 도와야한다.
내가 먼저 살아야 남을 도울 수 있다는 뻔한 소리로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럴떈 정말로 내가 돕는 대상이 '남'인지 살펴보자.
내 배를 채우려고 돕는척하다가 고꾸라진 경험으로 남을 돕지말자는 생각을 가져선 안된다.
힘이 있어야 남을 돕는게 아니라,
남을 도울 때만 힘이 나는게 세상의 이치다.
왜 힘이 나는가?
그만큼 거대한 가치의 네트워크에 접속했기 떄문이다.
효율 자체가 다르기 떄문이다.
말을 탔냐 자동차를 탔냐가 다른 것은 다를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