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 것.
그것이 오히려 문제를 푸는 방법일 때가 있다.
그것은 그저 머릿속에 최악의 상상을 했다는 것만으로 부모님이 아이한테 선심쓰듯 선물을 주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진심으로 최악의 상상을 했다면 인간은 그것에 다른방식으로 대비하게 되어있다.
그 최악의 상황속에서도 살 길을 찾아 나선다.
머리를 드디어 굴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전혀 다른 방식의 해결책을 생각하고 기획한다.
실제적으로 책임을 지기 시작한다.
허리아프다고하면 허리에 파스를 붙여주고, 머리아프다고하면 머리에 파스 붙여주는 군대 병원과 같은 식으로 문제를 풀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보자.
이것은 단순한 문제풀이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당에 풀이 나는 문제가 있을 때, 그저 풀을 뽑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면 풀이 너무나도 많고 지속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번 [마당에 풀이 나는 문제]로 인해 내 인생에서 단 한번이라도 화가나는 일을 겪는 순간,(그 기준은 각자 다르겠지만)
그 문제가 무한대로 반복된다고 생각하는 최악의 상상을 실현시켜야한다.
그 해결책으로써 스스로 정원사가 되거나, 마당에 콘크리트를 붓어버리거나, 집을 팔아버리거나 하는 [큰 해결]을 시작해야한다.
과민반응과 과대 망상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상 과한게 아니라 당연한 걸지도 모르지만, 어쩄던 평균적으로 생각하게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바를 떨고, 극한의 상황을 고려하는 것이다.
포기 ( 최악의 상상 ) -> 절망 -> 큰 해결
3단계의 과정을 통해 문제의 본질로 들어가게 된다.
문제라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아주 미세한 털과같은 것일 뿐이다.
그 안에는 어마어마한 악의가 숨어있다.
그렇기에 그 솜털같은 사소한 문제를 본 순간, 미친듯이 날뛰며 과민반응 해야만한다.
그것이 본질이다.
본질은 숨겨져있는게 아니라, 그저 너무 커서 안보이는 것 뿐이다.
작은 것을 크게 보기만하면 모든 본질은 이미 드러나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문제에는 그저 큰 해결법이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