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설명했듯이 수치심은 가장 죽음에 가까운 상태고 감사는 가장 신에 가까운 상태다.
가진 것이 없을 때 죽는 것이고, 가진 것이 많을 때 신이 된다.
수치심은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가질 수 있는데, 가지고 싶은데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감정이 수치심이다.
가지고싶지도 않은데 부끄러운 기억이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회사를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어야만 회사에서 수치심을 느낀다.
그 특정 상황, 특정 회사에 나갈 수도 없는 사람은 수치심을 느낄 기회조차 없다.
나의 온전함은 회사에서 ->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감사를 느끼는 것이지만
현실은 회사에서 -> 수치를 당한다.
부끄러움은 폭력이다. 그것도 가장 죽음에 가까운 폭력이다.
폭력에 대한 올바른 대처는 똑같은 힘을 키워서 폭력을 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다.
가장 이상적인 복수이며 국가가 그러하듯 언제든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만한다.
수치심에 대한 복수는 절대로 수치를 당하지 않기위해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수치를 준 행위들을 똑같이 수치스럽게 만드는 방법이다.
가진 것이 없다고 판단내려버린 것이 가장풍성하고 강한 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만큼의 방법은 없다.
하고자하는 말을 정리해보면 수치심은 나스스로에 대한 자학적 공격이 되서는 안되고,
인간으로써 당할 수 있는 가장 큰 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깨달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큰 폭력을 당할만큼, 그렇게 큰 가치를 내가 지니고 있다는 것만 명심하면 그만이다.
수치심은 극복하려고해도 헤어나올 수 없는 죽음의 바다이다. 자기가 자기를 공격해야하니 누구를 향해 복수해야할지도 모른다.
그 지옥의 바다에서 나오기 위해선 모든 공격성을 나자신의 여사건인 나 이외의 것으로 돌리는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이기심이 필요하다.
부끄러움은 왜 나의 몫 이라는 밈처럼 수치심은 전염되고 전파된다.
수치심의 본질을 보면 사실 내가 부족하고 못나서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나의 강력한 싸대기라는 사실이 있다.
나스스로 무의식적으로 주변환경이 맘에 안들고 화가날 때 일부러 비벼버려서 어색함을 만들고 순간적으로 수치스러운 상태로 나를 몰아버린다. 누군가 나를 바보취급하도록 만들어버린다.
사실 그것은 내가 불러일으킨 것이고,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닌 나의 분노이다.
나를 공격함으로써 적을 공격하는 가미가제 자살 폭격을 한 것이다.
그렇게까지 끝에 끝까지 몰린 나자신을 알아야하며 그만큼 큰 공격을 하고 싶었던 것이 나자신의 마음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나자신은 단 하나의 잘못도 없다는 메커니즘을 알아야한다.
오히려 많은 것을 가졌기에 모든 것을 버려도 되는 강함을 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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